[조선사]개화사상
- 최초 등록일
- 2000.09.18
- 최종 저작일
- 2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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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형성기의 개화사상〕
2.〔초기의 개화사상〕
3.〔후기의 개화사상〕
4.〔성격과 평가〕
본문내용
개화사상(開化思想)
조선 말기, 종래의 전통적인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시민사회의 형성을 지향한 개혁․진보의 사상. 구체적으로는 1853~60년대부터 형성되어 발전한 자주근대화 및 변혁과 진보의 사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문화를 계발하거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쓰이고 있는 <개화>라는 용어는 원래 《주역(周易)》의 <개물성무 화민성속(開物成務 化民成俗)>에서 취한 것으로, 그 뜻은 모든 사물의 궁극을 밝혀 경영하여 나날이 새롭게 하고, 새로운 것으로 백성을 변화하게 하여 풍속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또 중국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顧愷之)는 《정명론(定命論)》에서 <무릇 극(極)을 세워 개화(開化)하며, 성(聲)을 세워 법칙을 만든다>라고 하였다.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에서는 개화라는 말이 당시의 민족적 위기를 맞아서 나라와 백성을 자주적으로 근대화, 변혁시켜 진보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형성기의 개화사상〕
반외세 와 반봉건이 우리 민족이 당면한 역사적 과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나라 안의 봉건적 모순을 깨닫고 세계 역사발전의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려는 개화사상이 생겨났다.
개화의 사상은 1853~60년대에 오경석(吳慶錫)․박규수(朴珪壽)․유대치(劉大致) 등 선구자들에 의해서 형성되어갔다. 그들은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실학의 한 흐름인 북학파의 사상에다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목하여 개화사상의 기본 골격을 세울 수 있었다.) 계승하고 중국에서 구입해 온 신서(新書) 등의 도움으로 개화사상을 형성해 나갔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최초의 선구자는 중인 출신의 역관 오경석이었다. 그는 북학파 박제가(朴齊家)의 실학을 공부하였고, 10여 차례나 청(淸)나라를 내왕하면서 서양 열강의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현실과 서양의 새로운 과학에 따른 신학문에 눈을 떴고, 《해국도지(海國圖志)》 《영환지략(瀛環志略)》 《박물신편(博物新編)》 등의 신서 수백권과 새로운 세계지도와 자명종 등 다수의 서양문물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오경석은 박제가의 실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신서를 읽고 연구하여 개화사상을 형성하는 한편, 중인 출신 한의인 친구 유대치(劉鴻基라고도 함)에게도 신서 연구를 권하였다. 그리하여 유대치도 오경석의 사상과 견문을 전해 듣고 신서들을 독서, 연구함으로써 개화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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