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塵沿途遇寇 危城失守抗志捐軀 제칠심삼회 어필몽진연도우구 위성실수항지연구 후한통속연의 73회 어가가 몽진해 길을 따라 도적을 만나고 성을 수비를 못해 항거하는 뜻으로 몸을 버리며 죽다 ... 양봉 한섬 변욕취안읍건도 태위양표등 구의동환낙양 문리요불과무변 지호잠시주가 서대후도 拗不?[niu ? ... 헌제상공각등도하 특사태복한융 서부홍농 여타강화 한헌제는 아직 이각등이 도하할까 두려워 특별히 태복 한융을 시켜 서쪽에서 홍농에 이르러서 그와 강화를 하게 했다. ?
第七十四回 孟德乘機引兵迎駕 奉先排難射戟解圍 제칠십사회 맹덕승기인병영거 봉선배난사극해위 후한통속연의 74회 조맹덕[조조]이 기회를 틈타 병사를 이끌고 어가를 맞아들이고 봉선[여포]은 ... 진조위대장군 봉무평후 조조를 대장군으로 승진하고 무평후에 봉했다. 太尉楊彪, 司空張喜, 見操大權獨攬, ?皆辭職。 ... 시당이각등협권겸정 욕결술위외원 특청지수술위좌장군 봉양적후 당시 이각등은 권력을 끼고 정권을 잡아 원술을 외부원조로 결탁하려고 특별히 어지로 원술을좌장군으로 삼고 양적후에 봉하려고 했다
印綬將軍赤族 제구십육회 승유조사마병권 작인수장군적족 赤族:아무도 없는 겨레라는 뜻으로, 한 겨레가 모두 살해됨 후한통속연의 96회 유언 조서를 받들어 사마씨가 정권을 잡고 인수를 ... 반납한 장군은 한 겨레가 다 살해되었다. ... 封覽表, 但見上面寫着: 홀유황문치지가전 하마궤정 소주방접수후 계봉람표 단견상면사착 갑자기 황문이 어가 앞으로 말달려와 말에서 내려 꿇어앉고 올리니 어린 군주 조방은 접수한 뒤로 봉투를
效忠 迎虎主劉璋失計 제팔십육회 거마아허저효충 영호주유장실계 후한통속연의 86회 마초를 항거한 허저는 충성을 다하고 호랑이를 맞아들인 유장은 잘못된 계책을 쓰다. ... 잘 한명의 종친과 교제를 맺으러 가지 않고 조조에게 선물을 바치니 진실로 사람이 이해 못하겠습니다!” ... cai]① 한 읍(邑)을 다스리는 재능 ② 조그마한 재주 ③ 겨우 지방 장관을 할 재능 展驥足:뛰어난 인물이 가진 재능을 충분히 발휘함.
第八十回 焚烏巢曹操屢施謀 奔荊州劉備再避難 제팔십회 분오소조조루시모 분형주유비재피난 후한통속연의 80회 오소를 불지른 조조는 자주 계책을 시행하며 형주로 달아난 유비는 다시 피난하다. ... “나는 항복한 장수가 아니나 이미 사로잡혔으니 정말로 한번 죽여주십시오!” 操慰語道:“本初無謀, 不知用君, 今喪亂未定, 方當與君共圖大事, 幸毋執迷!”
老夫得少妻 上遺箋壯年悲短命 제팔십오회 속가우노부득소처 상유전장년비단명 후한통속연의 85회 이어 좋은 배우자를 만난 노부는 어린 처를 얻고 전을 올린 장년에 단명으로 슬퍼하다. ... -총9획; yin) 주순은 또 조기에 사망하고 아우인 주윤 관직이 흥업도위가 되며 도향후에 봉해지니 이는 천천히 표시하겠다. 且說魯肅往代瑜任, 道出尋陽, 晤見尋陽令呂蒙。 ... ng](일부의) 군대를 파견하다 감녕이 홀로 이릉을 진격해 취함을 청하니 주유는 병사 3천을 파견해 감녕에게 데리고 가게 부탁해 이릉에 가서 한번 북을 쳐 함락시켰다.
第八十一回 守孤城審配全忠 嫁二夫甄氏失節 제팔십일회 수고성심배전충 가이부견씨실절 후한통속연의 81회 고립된 성을 지키는 심배는 충성을 다하고 2남자에게 시집간 견씨는 절개를 잃다. ... 견식고인일주 一籌:한 가지 계책 식견이 타인보다 한수가 높다. 操也以爲然, 允卽援譚, 遣毗先歸, 自督兵再至黎陽。 ... 조병함입성내 약유삼백다면 무로가분 입피수병위과 살득일개불류 연풍찰야인차필명 조조병사가 성안에 들언자가 대략 300여명으로 달아날 길이 없어 곧 수비병에게 포위당해 한명도 남기지 않고
第九十三回 失街亭揮淚斬馬謖 返漢中授計戮王雙 제구십삼회 실가정휘루참마속 반한중수계륙왕쌍 후한통속연의 93회 가정을 잃고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며 한중에 돌아가 왕쌍을 죽이라는 계책을 ... 연대타취마포과 각악도돌출 대갈일성 불사왕쌍회두 변종타배후벽거 연견대두 감락마하 위연은 그가 말을 달려 감을 기다려 칼을 잡고 돌파해 나와 큰 소리를 지르고 왕쌍이 머리를 돌리길 기다리지
賜蓋:과거에 장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어사화와 함께 내리어 주는, 머리 뒤에 꽂는 비단 장식품을 이르던 말 후한통속연의 88회 외부 사신을 본 간웅 조조는 대신 칼을 잡게 하며 ... 문제가후 후묵연부답 급조재삼힐문 후시미소도 적유소사 사원본초 유경승부자니 일어족의 가후에게 물으니 가후는 침묵해 대답을 안해 조조는 두세번 힐문해 가후는 비로소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 원래는 칼을 잡고 호위한다는 뜻이었는데, 후에 남의 손을 빌려 글을 쓰거나 남에게 대필시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兵 제팔십사회 소주랑동오주전 파조군적벽오병 후한통속연의 84회 주랑을 불러 동오에서 전쟁을 주장하고 조조군을 격파하며 적벽에서 싸우다. ... 각설유비분주도중 행유장비단후 시득탈난 각설하고 유비가 도중에 도주하나 다행히 장비가 뒤를 끊어서 비로소 난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及見趙雲救回甘氏母子, 又聞? ... (다시 한 구절 핍박한다.) 權拔劍斫案, ?去一角, 向衆宣言道:“諸將吏如再言迎操, 此意, 但操軍沿江巡?, 恐不容我艦過去, 如何縱火?”
第八十二回 出塞外繞途殲衆虜 顧隆中決策定三分 제팔십이회 출새외요도섬중로 고륭중결책정삼분 후한통속연의 82회 변경을 나와 길을 돌아 여러 오랑캐를 섬멸하고 융중을 돌아보고 3분의 계책을 ... 비부지신야 대서익후 서어비도 남양유제갈공명 세칭와룡 장군역원상견부 유비는 다시 신야에 돌아와 서서를 더욱 후대하여 서서가 유비에게 말했다.
第七十八回 穿地道焚死公孫瓚 害國戚勒斃董貴妃 제칠십팔회 천지도분사공손찬 해국척륵폐동귀비 후한통속연의 78회 땅굴을 파서 공손찬을 태워 죽이고 나라 친척을 해쳐 동귀비를 압박해 죽게 ... 삽서일필 위하문재실처소장본 한 붓을 삽입하니 아래 문장에 다시 처자를 잃게 하는 장본인이 된다. 便留關羽守下? ... 但回憶公孫瓚爲同學舊友, 一跌赤族, 不免傷心; 단회억공손찬위동학구우 일질적족 불면상심 단지 공손찬은 같이 배우던 옛 친구를 추억하면 한번 실수로 온 겨레가 다 죽어 상심을 면치 못했다
善謀 제칠십육회 제십승곽가신의 권재진가후선모 후한통속연의 76회 대책으로 10승을 한 곽가가 논의를 펼치고 다시 진격하라고 권하는 가후는 좋은 꾀를 내다. ... 등위의해윤입도 자득소망 포역락윤 취장윤추입함거 령등대거 진등은 한윤을 압송해 허도에 들어가야함은 자신 소망대로 되어 여포도 또 즐겁게 허락해 한윤을 함거에 밀어넣고 진등이 데리고 가게 ... 각설장수기항조조 문득조간점숙모 불유적노기상충 변여가후밀의 모습조영 奸占:남의 아내나 딸을 강제로 자신의 아내나 첩으로 삼음 각설하고 장수는 이미 조조에게 항복하고 조조가 간통해 숙모를
o]① 일족(一族)의 세계(世系) ② 종묘(宗廟) ③ 가독(家督) 후한통속연의 90회 부친의 악행에 도와 조비는 황위를 찬탈하고 종사를 접하는 촉한이 황위의 터를 열다. ... 당하여대소장사 일체거애 추시우위충의후 령우자관흥습봉 곧장 크고 작은 장사를 시켜 일체 애도를 거행하고 관우 시호를 충의후라고 내려 관우 자식인 관흥이 봉작을 세습하게 했다. ... 차타유년 유낙양전도소식 내시조조병사 어시비일의한오 무심급위 한해가 지나 낙양에서 소식이 전해지길 조조가 병사하였다고 하니 이에 유비는 한뜻으로에 돌아와 장례 임무를 주관했다.
ohuan]반환하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표로 한헌제에게 상주하게 권해 좌장군 의성정후의 인수를 반환하라고 하니 유비가 자연히 그대로 했다. ... 第八十九回 得漢中劉玄德稱王 失荊州關雲長殉義 제팔십구회 득한중유현덕칭왕 실형주관운장순의 후한통속연의 한중을 얻은 유현덕이 왕을 호칭하고 형주를 잃은 관운장은 의리로 순국하다. ... 거량열전중 량병미수공한중 고본회조정사 부종나씨연의 제갈량열전에 근거하면 제갈량은 아직 한중 공격에 따르지 않았으므로 본 89회에서는 정사를 따르고 나관중 삼국연의를 따르지 않았다.
第六十九回 罵逆賊節婦留名 遵密囑美人弄技 제육십구회 매역적절부류명 존밀촉미인농기 弄技:재주나 기술 따위를 부림 후한통속연의 69회 역적을 욕하며 절개를 지킨 부인이 명성을 암기고 ... nzhi]① (문장이) 딱딱하다 ② 융통성이 없다 ③ (그림이) 생동감이 없다 ④ 頑迷하다 한번 자세하고 한번 생략해 붓이 융통성이 있다. 嗣爲呂布所知, ? ... n]① 심심풀이하다 ② 희롱하다 ③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 ④ 소일하다 동탁은 아직 남은 한이 아직 소멸하지 않고 풀 방법이 없어 특별히 미오에 이르러서 소일하려고 도읍을 나와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