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과 자유주의
- 최초 등록일
- 2000.09.04
- 최종 저작일
- 2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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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실학 사상의 대두
2. 농업 중심의 개혁론
3. 상공업 중심의 개혁론
4. 실학사상의 개화사상에의 연결
5. 실학 사상의 성장
6. 실학 사상의 전성기
본문내용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화사상은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실학사상 이 자아의 재확립에 있어서의 근본문제는 경제건설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성호 이 익 이후의 민족적․근대화지향적 실학사상에 있어서 의타적인 근대화란 본질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1. 실학 사상의 대두
17․18세기 조선봉건사회는 붕당정치가 무너지면서 치열한 정쟁을 유발하여 노론 일당체제로 귀결하였다. 정권에서 배제된 정치세력은 주로 근기지방에 근거지를 둔 남인들. 이들은 재야학자로서 농촌에 머물면서 당시 사회의 모순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그 해결책을 강구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양란 이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농업면에서는 대동법의 실시와 화폐의 사용, 민영수공업의 발전 등으로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한다. 농촌에서는 농민층의 분해가 일어나 대지주와 빈농층이 발생하고, 도시에서는 도고상인의 활동으로 영세상인은 몰락의 길로 가고 국외적으로는 청과의 관계가 열리고, 청의 선진문물을 수용하자는 북학론이 起한다.
청은 명말 청초의 실학적 학술사상의 전통을 계승한 고증학이 일어나 과학적인 학문연구 방법을 발달시키고 있었고 서양의 과학기술과 사상이 서학으로서 도입한다. 중세봉건사회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고 있던 성리학이 보수화, 교조화, 폐쇄화의 말폐만 드러내고 조선후기 봉건 사회 해체기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실학자들은 점차 성리학의 교조적인 주자해석에 따라 경전을 해석하기를 거부, 나아가서는 성리학 자체를 극복하는 단계까지 나아가 근대문물을 도입하려는 개화사상으로 연결한다.
근기남인은 토지문제를 비롯한 농업문제에 관심을 두며 북학파 - 18세기 후반 집권 노론층에서 발생한 북학자들- 주로 도시에서 성장한 이들은 淸의 우수한 문물을 접하고 상공업의 발전을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