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단재신채호
- 최초 등록일
- 2004.06.05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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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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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신채호의 생애와 활동
2. 신채호의 현실 인식과 정치․사회사상
3. 신채호의 역사학과 역사관
4. 신채호 사학의 사학사적 위치
본문내용
단재 신채호는 1880년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마을에서 한 농촌 선비의 둘재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령신씨로서 신숙주의 18대손에 해당하는 양반가문에서 태어났다. 신채호는 조부의 소개로 18세 되던 해인 1897년 대한제국에서 학부대신을 지낸 신기선을 만나 목천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신기선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입학했다. 신채호는 유학공부를 계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 수입되고 있던 중국·일본의 신서와 개화파들이 간행한 신서들을 읽으면서 점차 개화 자강론자로 변모해가기 시작했다. 신채호는 1905년 장지연의 초청을 받고 『황성신문』의 논설기자로 입사하여 계몽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황성신문』은 1905년 11월20일자 사설「시일야방성대곡」 때문에 무기정간처분을 당하였다. 이때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은 신채호에게 『대한매일신보』의 논설기자로 옮겨올 것을 요청하여 단재는 1906년 이후 이 신문에서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같은 언론활동을 계속하면서 단재는 1907년 4월 양기탁·안창호·전덕기·이동녕등이 비밀결사한 신민회에 참여하여 『대한매일신보』에 사실상 신민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설 등을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