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백제
- 최초 등록일
- 2012.05.22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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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비시대(538~660)
26.성왕(523~554) - 27.위덕왕(554~598) - 28.혜왕(598~599)
- 29.법왕(599~600) - 30.무왕(600~641) - 31.의자왕(641~660)
동성왕-무령왕대에 이루어진 안정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성왕은 백제의 중흥과 왕권강화의 목적에서 사비로의 천도를 단행하였다. 사비지역에 대한 관심은 동성왕대부터 있었지만 이 때 천도가 단행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성왕의 영민하고 과단성 있는 결단과 성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성왕의 사비천도를 적극 지지한 세력으로는 사비지역을 기반으로 한 신진세력인 사씨(沙氏)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비천도를 결심한 성왕은 사비지역에 왕궁을 비롯해 여러 관청을 건축하고, 부소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연결되는 나성을 축조하였다. 그리고 시가지는 조리제(條里制)1)에 입각해 정비하였다. 이러한 준비를 마친 후 538년(성왕 16)에 천도를 단행하였다.
천도 후 성왕은 왕권강화를 위한 제반조처를 추진해나갔다. 우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개칭, 부여족의 전통을 강조해 왕실의 전통성과 권위를 강화하였다. 또한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 모시박사(毛詩博士)2)등을 초빙, 문화의 질을 높이고, 선진문물을 왜에 전수하였다. 한편 16관등제를 정비하고, 22부제(部制) 등 중앙의 중요 관청들을 설치하였다. 수도를 5부로 나누고, 각 부에 5항을 두는 수도의 행정조직도 완비하였다. 나아가 5방(方)·군(郡)-성(현)제를 갖추어 지방에 대한 통제력도 강화해 나갔다. 사비천도 후 성왕대의 이러한 조처는 동성왕·무령왕·성왕으로 이어지는 정치가 왕권중심으로 움직여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왕명을 받들어 행하는 22부가 핵심적인 기능을 하였다. 그 결과 귀족들의 회의체인 5좌평제는 정치일선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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