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박영효의 개화사상
- 최초 등록일
- 2004.06.24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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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박영효의 연혁 (1861~1939)
2. 박영효의 사상
3. 박영효가 추진했던 개혁과 행동
4. 박영효가 행한 행동이 조선의 근대화에 미친 영향.
본문내용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박영효는 1910년 한일합방 후에 일본에 가담함으로써 후세에 좋은 인식은 갖고 있지 못하였지만 1910년전까지는 조선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기 때문에 그 시기까지만 그의 사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박영효의 사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의 근대국가 수립이었다. 이러한 생각 밑바닥에는 부국강병이라는 것이 깔려 있었다. 박영효의 이러한 사상이 형성된 것은 박규수의 영향이 컸다. 14세 때부터 박규수의 집을 드나들었던 박영효는 이 때부터 개화사상을 접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2년 뒤 박규수가 별세하면서 유홍기에게 지도를 받았다. 불교신자였던 유홍기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양반 자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믿었는데 이는 근대국가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유교나 양반체제를 붕괴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의식하였던 듯하다. 조선의 근대국가 수립을 위해서 노력하면서 박영효는 조선이 자주독립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한일합방이 이루어지면서 일본에 가담하여 그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조선이 자주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였다.
정리하면 박영효의 사상은 조선의 근대국가 수립(개화사상이 여기에 포함됨), 자주독립국가라는 2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박영효의 사상이 그의 행동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