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조선성리학의 역사적 기능
- 최초 등록일
- 2005.12.23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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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학사상- 조선성리학의 역사적 기능` 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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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에서 어떤 사실들을 이해하는 사람의 편견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인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의 역사, 특히 그 지배사상인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역사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설명되기 일쑤였다. 그러한 인식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국권 상실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그 사회를 지배한 사상이 져야 한다는 견지에 생겨난 것인데, 이러한 것은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민족적인 자기반성의 한 형태로 대두되어 있는 인식이 일반적이였다. 그러나 위에 말한 것 처럼 성리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우리 자신의 반성적인 자세에서만 전적으로 유래되는 것이 아니었다, 민족외적인 경로에도 존재하였는데 다 아는 바와 같이 일제 식민주의 사관들은 자기네의 식민통치를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한국 민족의 역사를 되도록 과소평가하고, 그 증거로 조선후기의 `당파성`이라는 것을 끄집어 내어 한국민족의 선천적 민족성의 하나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쟁은 어디까지나 조선후기란 한정된 시기의 정치현상에 불과하고 민족성이라든지, 한국사 전체를 일관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지만, 식민주의 사관아래서는 그것을 우리 자신들이 믿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기 되는 민족을 파멸로 이끈 당파성, 당쟁을 불러 일으킨 장본으로써 성리학,성리학을 지배사상으로 한 조선의 역사 전부를 민족사에서 운위하고 싶지 않은 치부러 여기는 생각은 실로 이러한 경로를 거쳐 응고된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에 의하여 처음부터 의도된 것으로 믿게 되는데 사실 일제의 당파성 이론이 근거하고 있는 당쟁이 부정적으로만 설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선의 국권상실이 세도정치하에서 있었던 일이고, 부정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당쟁`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세도정치는 세도일족에 의해 정치가 전적으로 좌우되는 정치 형태로서, 성리학과는 전혀 무관하고, 오히려 성리학에서 경계해 마지 않는 소수 귀족정치의 일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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