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명성황후 시해부터 대한제국
- 최초 등록일
- 2005.05.26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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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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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일본의 명성황후시해(을미사변)
2.을미의병
3.아관파천
4.대한제국의 성립과 광무개혁
본문내용
친일세력의 실각에 불안을 느낀 일본은 또다시 폭력으로 정국을 뒤집어 놓기 위하여 먼저 명성황후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이를 위해 일본은 미우라 고로를 우리나라 주재 공사에 보내 일본인 무뢰배들로 하여금 궁궐을 습격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의 명성황후시해사건을 을미사변이라고 부른다. 처음에 이들은 민비와 정적관계에 있던 대원군을 종용하여 가담시키고, 행동대로는 해산설이 나돌던 조선군훈련대를 이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만을 이용하여서는 도저히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수비대병력을 행동대의 주축으로 삼았다. 그리고 서울에 거류하는 일본인 낭인배·경관·사인을 끌어들이고 조선정부에 고빙되어 잇던 일본인 고문관·신문사 사장·기자·통신원까지 가담시켰다. 아울러 해산설로 불만을 품은 훈련대의 간부 우범선(禹範善)·이두황(李斗璜) 등을 끌어들이고, 거사일 새벽 공덕리 별장에 있던 대원군을 종용하여 일본군 수비대의 호위 아래 궁성으로 향하였다. 당초 8월 22일이 예정일이었으나 음모가 누설될 것을 염려한 이들은 8월 20일 새벽을 기하여 행동을 개시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궁궐을 공격하여 들어가자 궁성에서는 훈련대연대장 홍계훈(洪啓薰)과 군부대신 안경수(安壽)가 1개 중대의 시위대병력을 이끌고 대항하였다. 그러나 홍계훈은 일본군 장교의 총격을 받아 전사하고 안경수와 시위대병력은 일본군의 공격에 밀려 무너졌다. 이들 폭도는 건청궁(乾淸宮)으로 쳐들어가 국왕의 침전(寢殿)인 곤녕전(坤寧殿)과 왕비의 침전인 옥호루(玉壺樓)에 난입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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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1 (근대민족의 형성 [1]) 강만길/ 한길사/
한국사개론 이현희 / 實學社 /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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