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크는 인문학 - 고종
- 최초 등록일
- 2022.08.20
- 최종 저작일
-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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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863년 12월 철종이 재위 14년 만에 33세의 나이로 창덕궁에서 대를 이을 수 있는 자식 없이 죽자, 대왕대비 조 씨는 1852년 7월 25일에 태어난 흥선군 이하응과 여흥 부대부인의 둘째 아들인 명복을 다음 왕으로 결정했다. 이에 철종이 세상을 떠난 지 5일 만에 명복, 즉 고종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조선 제26대 왕으로 등극했다. ‘명복’이란 이름은 고종이 어릴 때 쓰던 이름으로, 흥선군이 3명의 아들 중 재황(고종의 초명)을 가장 귀여워하여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의미로 ‘명복’이라고 불렀다. 관례를 치르기 전에는 ‘명복’으로 불리다가 관례를 치르고 난 뒤에는 ‘이재황’으로 이름을 개명하였고, 후에는 ‘이형’으로 한 번 더 개명하여 ‘이재황’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혈통으로만 따지면 고종은 왕위에 오르기 힘든 위치였다. 사실 철종도 전 왕인 헌종이 아들 없이 죽는 바람에 왕실 전체를 뒤지다시피 해 앉힌 왕이었는데 또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은 것이었다. 왕실 가족 중 한 명인 흥선군은 철종이 병으로 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손을 쓰기 시작했다. 왕실의 가장 웃어른인 대왕대비 조 씨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잇는 것에 대해 상의를 한 것이다. 명복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어머니 쪽의 친척인 안동 김씨를 숙청하려는 대왕대비 조 씨와 흥선군의 정치적 입장이 잘 맞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명복은 익종의 후계이자 대왕대비 조 씨의 양자로 호적에 올려 왕위에 올랐다. 형인 ‘이재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려 조대비의 수렴청정이 손쉽게 가능했기 때문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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