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교육과 과거제도
- 최초 등록일
- 2024.02.12
- 최종 저작일
- 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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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학 12도
2. 고려의 최고 교육 기관인 국자감
3. 유학 학부와 기술 학부로 나누어진 국자감
본문내용
고려는 일찍부터 개경과 서경에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요 관료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개경에는 국자감을 설치였고 각 지방에는 향교를 세웠습니다.
각 지방에 세워진 향교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사학 12도
고려 중기에는 사설교육기관이 많이 생기면서 사학이 융성을 하였는데요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개경에서 설립이 되어 융성하였습니다.
최충의 문헌공도 다음으로 유명하였던 개경의 사학으로는 정배걸의 홍문공도가 있습니다.
최충은 해동공자로 불리운 인물인데요 최고관직인 문하시중까지 올랐다가 은퇴한 후 문헌공도를 열게 됩니다.
사설교육기관인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립교육기관인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습니다.
국립교육기관인 국자감의 관학 교육이 위축되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습니다.
관학을 진흥하기 위하여 예종 때에는 국립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전문 강좌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양현고와 같은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