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 최초 등록일
- 2021.03.07
- 최종 저작일
- 2020.10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0원
목차
1. 칼 바르트의 생애
2. 칼 바르트의 신학
1) 서론
2) 칼 바르트: 하나님의 자유로서의 초월성
3) 신학적 방법
4)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5)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삼위일체적인 신학
6)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
7) 선택의 교리
8) 평가
9) 결론
3. 칼 바르트에 대한 서평
본문내용
바르트의 삶과 신학자로서의 생애 칼 바르트는 1886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설교자들을 양성하는 대학(오늘의 신학교와 비슷함)의 교수였고 스위스 개혁 교회 내의 상당히 보수적인 그룹과 어울렸다. 바르트의 가정 생활은 엄격했지만 전반적으로 행복했다. 훗날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대단히 존경했고 어머니를 깊이 사랑했었노라고 회상했다. 1902년 바르트는, 견진례(confirmation, 장로교회의 입교식- 역주)를 받기 전날 밤 신학자가 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설교와 목회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훗날 쓴 것처럼, 당시 그가 희미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 결심했다. 그는 베른, 베를린, 튜빙겐, 마부르그 등의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결국 자유주의 사상 가운데 리츨 학파 의 신학 사상을 따르게 되었다. 베를린에서는 하르낙의 영향을 받았고, 마부륵에서는 위대한 리츨 신학자였던 빌헬름 헤르만의 제자가 되었다. 물론 후에 그는 이 신학을 철저하게 거부함으로써 그의 스승들을 크게 당황시켰다. 바르트는 그의 생애 말년에 많은 명문 대학교들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들이 쏟아졌지만 그 스스로는 박사 학위를 마치지 못했다. 1908년 그는 개혁 교회의 목사직을 위해 안수를 받았고 제네바 교회의 부목사직을 맡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3세기 반 전에 칼빈이 강의했던 바로 그 대강당에서 이따금씩 설교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부목사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그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 하고 1911년 스위스와 독일의 국경 지대의 마을인 자펜빌의 한 작은 교구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신학적 역사가 만들어진 것은 바로 이 자펜빌에서였다. 거기서 바르트는 신학에 있어서 하나의 혁명을 창출했던 것이다.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과 급진적인 결별을 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그 중 두 가지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