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시대 관학, 사학
- 최초 등록일
- 2020.12.21
- 최종 저작일
-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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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와 조선시대 관학, 사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고려의 교육제도
1) 관학
2) 사학
2. 조선의 교육제도
1) 관학
2) 사학
3.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국자감
국립 종합대학의 성격을 가진 고려의 최고 학부이자 대표적인 인재양성기관이다. 국자감은 지방의 독자적이던 학교 교육을 중앙의 통제로 하고 교육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성종 11년 개경에 창설되어 전국의 12목에 경학박사를 두었고, 예종 14년에는 관학을 진흥하기 위해 양현고를 설치하였다. 장학재단인 양현고를 두어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학사를 신축하고, 학생들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함이었다. 국자감은 크게 유학 학부와 기술 학부로 나뉘었다. 입학자격은 귀족자제를 대상으로 하여 국자학은 대개 문무관 3품 이상, 대학은 5품 이상, 사문학은 7품 이상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문묘와 학사를 갖추고 있으며, 『논어』와 『효경』을 필수과목으로 두고, 전공과목은 『주역』과 『상서』·『주례』·『예기』·『의례』·『모시』·『좌전』·『공양전』·『곡량전』의 9경으로 되어 있다. 그 밖에 산술과 시무책을 익히고, 여기에 매일 한 장씩의 습자를 하였으며, 『국어(國語)』와 『설문(說文)』·『자양(字樣)』·『자림(字林)』·『삼창(三倉)』·『이아(爾雅)』를 읽도록 했다. 학생 1인에게 두 가지 문제를 주고 이에 대해 토론, 탐구하는 과정도 있었다.
고려시대 과거에 응시하려면 전국에서 실시하는 예비시험에 합격한 후, 국자감에서 행하는 재시험인 감시(監試)에 합격해야만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국자감의 학생들은 예비 시험을 면제받고 곧바로 감시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학업 우수자는 감시나 과거의 일부도 면제받았다. 이렇듯 학생들은 과거에 응시할 때 여러 가지 특전을 받았으므로 관료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국자감은 유학과 함께 기술학을 교육하는 곳이었지만 성균관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이어지면서 기술학을 분리시키고 유학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변화하였다.
(2) 학당(동서학당, 오부학당)
학당의 교육 수준은 지방의 향교와 비슷했다. 다른 점은 국자감 및 향교에 있는 문묘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우리역사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동서학당(東西學堂))]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십이도(十二徒))]
[네이버 지식백과] 국자감 [國子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5319&cid=46621&categoryId=46621
주영흠 외 2명(2010), 교육철학 및 교육사, 신정
임채식 외 5명(2017), 교육철학 및 교육사, 수양재
자유학기제 시행 2.5년.. http://www.segye.com/newsView/20160807001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