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오경의 저술
- 최초 등록일
- 2012.11.06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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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모세오경의 저술에 관련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모세 저작을 인정한 전통적인 견해
2. 문서 가설
3. 자료 확인
4. 문서 가설에 대한 20세기의 조정
5. 1975년 이후 합의의 붕괴
6. 통일성을 강조하는 경향
7. 자료의 연대
본문내용
1. 모세 저작을 인정한 전통적인 견해
오경은 가르침을 목적으로 한 모세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모세의 삶과 그가 그의 가르침을 진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 하지만 오경의 저자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오경의 저자를 모세로 믿는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암시되고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의견은 17세기까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인정하는 견해였으며, 이에 대해 일부의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도 이슈거리조차도 되지 못했다. 이유는 오경을 포함한 성경을 신학과 윤리를 위한 지침으로만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모세의 저작설을 다루더라도 그것은 오경의 고대성과 권위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2. 문서 가설
15세기의 르네상스, 16세기의 종교개혁, 17~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는 오경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에 흥미를 갖게 하였다. 즉, 르네상스의 특징은 교대 고전 자료로의 복귀, 종교개혁은 신학적인 논의 속에서 성경의 절대 권위를 호소, 계몽주의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모든 판단의 척도가 되어 오경의 저작설을 부인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9세기 이전에는 모세의 저작설이 주도적이었다. 19세기 이전 영국의 정치 철학자 토마스 홉스, 베네딕트 스피노자, 영국의 이신론자들에 의해서 오경에서의 몇 가지 표현이 모세의 저작설과 전면 대치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주도적인 신학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19세기에 접어들어 세 가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첫째, 네 개의 주요 문학 자료로의 오경 분석. 둘째, 오경의 연대를 주전 7세기 후반으로 정함. 셋째, 출애굽기 25장에서 민수기 30장까지의 예배에 관한 법들인 P(priestly)자료의 연대를 포로 이후 시대인 주전 5세기로 정함.
프랑스의 장 아스트뤽은 모세의 오경 저작설을 ‘지난 세기의 질병’이라고 묘사하면서 저작설을 부인하였는데, 인간창조 기사나 사라가 두 번이나 이방의 왕에 넘겨진 기사처럼, 창세기 안에 있는 반복 되어진 기사와 하나님의 이름이 창세기에 다르게 표현되어진 것에 주목하여 비판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