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의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8.08.18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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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묵자의 사상
목차
1. 생애와 시대배경
2. 흥리
3. 겸애
4. 천지
5. 묵자의 정치사상
6. 묵자의 문화관
7. 유가사상과의 비교
8. 결론
본문내용
1. 생애와 시대배경
성은 묵(묵)이요 이름은 적(적)이다. 생존연대는 확실하지 못하나 대체로 기원전 479-381년으로 추정된다. 공자는 초기 주나라 때의 전통적인 제도 예악과 문물을 동경하여 논리적으로 이들을 합리화 내지 정당화하려고 힘썼던 반면, 묵자는 그 제도 등의 타당성과 효용성에 회의를 품고 이들을 좀 더 유용한 것으로 대치시키려고 하였다.
주대 봉건체제하에서 왕 제후 대부들은 각각 자기의 군사적 전문가들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 봉건제도의 붕괴와 더불어 이 군사전문가들은 각기 흩어져 사용자에게 봉사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했다. 이런 부류의 인물들을 사, 또는 무사라고 했다. 묵자와 그 제자들도 무사출신이었다.
2. 흥리
묵자의 중심사상은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는데 있었다(흥천하지리). 이익(이)이란 사회의 이익을 가리키므로 그 기원문제는 바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개선할 것인가?`가 되었다. 그러므로 묵자 학설에서 제일 중요한 맥락은 공리주의였다. 공리주의의 관념으로부터 비락 비공설이 나왔고, 권위주의적(?) 관념으로부터 천지 상동설이 나왔다. 그러나 이 두 가닥의 주요 맥락은 모두 겸애설 중에 모여지게 되었다.
3. 겸애
묵자는 천하의 혼란을 평정하려면 반드시 혼란의 근원을 살펴야 한다고 여겼다. 묵자는 원인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수 없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즉 임금과 신하가 서로 아끼지 않고, 아버지가 아들을 섬기지 않고, 가족과 국가가 서로를 아끼지 않는 데에 혼란의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묵자는 이의 해소를 위해 `겸상애`설을 주장하였다. 겸애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