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의 사상
- 최초 등록일
- 2014.12.26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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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묵자의 사상과 그 평가 및 현대사회의 적용에 관하여 다룬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묵자의 생애
2. 묵자의 사상
1) 겸애설(兼愛設)
2) 비공론(非功論)
3) 비명론(非命論)
4) 절용설(節用設)
3. 묵자
1) 묵자의 전래
2) 묵자의 내용
4. 현대사회에서 되새겨 볼만한 묵자의 사상
5. 묵자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 묵자(墨子)의 생애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이며, 성은 묵(墨) 이고 이름은 적(翟)이다. 묵자(墨子)는 존칭이다. 또, 묵가의 주장을 모은 책도《묵자(墨子)》라 한다. 묵자는 태어난 나라도 불분명하고, 태어나고 죽은 해도 확실지 않다. 대체로 공자보다 조금 뒤, 맹자보다 조금 앞이라고 짐작할 뿐이다(BC 470?~BC 390?).
묵(墨)은 성이라고 하는 것이 예로부터의 설이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묵형(墨刑;이마에 入墨을 하는 형벌)을 일컫는 말로서, 당시 주나라에서는 지배층은 형벌로 다스리지 않았고 피지배층에만 형벌을 가했다. 묵자는 형벌로 다스려지는 하층민이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혹자는 묵자의 피부가 검었기 때문에 묵씨라 불렸다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 노동자를 블루칼라라고 부르듯이, 피부가 검다는 것은 그가 노동을 하는 계층이었음을 말해 주는데 이것 역시 묵자가 노동을 하는 계층이었음을 보여 준다. 묵자의 주장 속에 먹줄 같은 노동 도구들이 비유로 많이 등장하는 것이나, 그를 따른 그룹이 대부분 하층 무사 집단이나 기술자 집단이었던 것도 역시 그의 출신 계층을 짐작하게 해 준다.
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다른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상을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나, 그의 사상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부국 강병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했다. 민중을 옹호한 묵자의 사상은 진나라에 의한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면서 약해지기 시작했고, 통일 이후 중앙 집권적 전제주의가 강화되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으므로 그의 경력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봉건적 사회체제의 해체 과정에서 당시 각 나라는 국내적으로는 중앙집권적 전제화, 국외적으로는 전쟁에 의한 대국화(大國化)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 것에 반대했던 그는, 예로부터 군주나 귀족에게 예속되어 있었던 직능씨족(職能氏族)을 길드적 공인집단으로 완성시켜 그 최고 지도자로서 겸애(兼愛;相互愛의 보편화)와 비공(非攻;反戰平和) 실현을 위해 왕후․귀족을 설득하고, 침략당하는 나라를 돕는 성곽수어(城郭守禦)와 같은 실천활동을 지도하였다.
참고 자료
김 학 주 지음 「묵자, 그 생애․사상과 묵가(墨家)」명문당
류 명 걸 지음「중국 그리고 인도철학」형설출판사
묵적(박재범옮김) 「묵자」홍익출판사
기 세 춘 역저「천하에 남이란 없다」도서출판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