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악
- 최초 등록일
- 2008.05.18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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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묘제례악 소개
목차
1. 종묘제례악의 유래와 위상
2. 종묘제례악의 행례절차와 음악
3. 종묘제례 악기
4. 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종묘제례악의 유래와 위상
세조 9년(1463)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편하여 세조 10년에 처음으로 종묘제향에서 연주되었다. 이 제례악은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음악이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었으며 인조 4년(1626)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으며, 1946년까지 제향에서 연주하였으나 그 뒤 멈추었다가 1971년부터 해마다 5월 첫 일요일에 행하는 종묘대제에서 종묘제례악과 악장과 일무가 동시에 연행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말기까지 장악원(掌樂院) 악사(樂士)들에 의하여 전승되었고, 일제 때에는 구황궁아악부(舊皇宮雅樂部) 악사에 의하여 전승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 악사들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보유자는 김종희 외 여러 명이다.
《세종실록》 권138에 의하면, 세종이 고취악(鼓吹樂)과 향악에 바탕을 두고 <정대업(定大業)>, <보태평(保太平)>, <발상(發祥)>, <봉래의(鳳來儀)> 등 신악(新樂)을 창제하였다 한다. 그 중 <정대업>과 <보태평>은 세종 29년(1447년) 회례악무(會禮樂舞)로 창제되었는데, <정대업>은 15곡, <보태평>은 11곡이었다. 그러나 세조 6년(1460년) 가사를 새로 짓게 함으로써 <보태평>은 11곡(희문, 기명, 귀인, 형가, 즙령, 융화, 현미, 용광정명, 중광, 대유, 역성)을 그대로 두고, <정대업>은 15곡에서 11곡(소무, 독경, 탁정, 선위, 신정, 분응, 순응, 총유, 정세, 혁정, 영관)으로 축소하였다. 이후 세조 10년(1464년)부터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 3년(1625년)에 <보태평>의 용광(龍光)과 정명(貞明) 두 곡을 합쳐 용광정명(龍光貞明) 한 곡으로 한 다음, 중광(重光)을 첨가하였다. 회례악으로 처음 창제된 세종 때의 <정대업>과 <보태평>은 《세종실록》 권138에, 축소되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한 음악은 《세조실록》 권48에, 인조 이후 변화된 음악은 《대악후보(大樂後譜)》 권2와 《속악원보(俗樂源譜)》 인편(仁篇), 신편(信篇)에 악보가 전한다.
참고 자료
- 문화재 정보센터
- 종묘제례악 (전) 국립국악원 편 지음|민속원
- http://210.95.200.103/uw/dispatcher/db/html/u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