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은나라 , 주나라의 읍에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04.13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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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동기로 본 은주에대한 설명과 읍에대한 자세한 설명.
목차
1. 청동기로 본 은주
2. 邑에 대하여
3. 읍의 바깥
본문내용
1)읍의 실태
a) 집락 여부
읍내에 집락이 존재하고 있음은 틀림없는데, 읍이 집락만을 특정하여 나타낸 것인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경작지나 산림지역을 포함한 지역적인 영역을 의미.
예)격종수(鬲從盨)의 명문 “격종에게 田 13邑을 復友한다(復은 又, 友는 賄의 뜻)”.
예)ꡔ春秋ꡕ ꡔ左傳ꡕ에 ‘읍’과 ‘田’을 바꾸어 놓아도 가능한 용법이 종종 보임
; 춘추시대 晋의 도읍을 ‘新田’이라 부름(新邑의 의미).
예) ꡔ公羊傳ꡕ이 ꡔ춘추ꡕ에 ‘허의 전(許田)’이라 한 것을 해설하여 “이것은 邑이다. 田이라 칭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전이 많고 읍이 적은 것을 전이라 칭하고, 읍이 많고 전이 적은 것을 읍이라 칭한다”.
따라서 ‘田’은 경작지 ‘읍’은 거주지로 보는 것은 생각이 굳어진 후세사람의 ‘해석’이다.
b) 大邑의 규모
은(殷)의 도(都)인 ‘대읍상(大邑商)’ ‘천읍상(天邑商)’은 수렵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할 것임;
전렵지가 반나절 행정 (약 20km) 이내의 원 가운데 있음(殷王의 읍의 규모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음).
ꡔ史記正義ꡕ(ꡔ竹書紀年ꡕ을 부연하는 것으로 보임)에 “紂王(주왕)때 좀 더 그 읍을 크게 했으며, 남쪽은
조가(朝歌)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감단(邯鄲)에서 사구(沙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궁별관(離宮別館)으로 했
다”에서 한단, 조가는 모두 安陽을 중심으로 반경 60km 정도의 원을 그릴 수 있 지역이어서 본래 어느 정
도의 영역을 읍이 모델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西周(서주)의 洛邑(낙읍-낙야에 위치, 成周 또는 新邑이라 부름)의 규모는 ꡔ逸周書ꡕ에 “이에 대읍 성주를
나라 안에 만들었다. 성울 세우니 方이 1,720丈, 부(郛: 성 밖의 大郭)는 方70리, 남쪽은 낙수에 걸치고 북
쪽은 겹산(郟山)에 접하니,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