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장흥 개관 서재필선생 기념공원 대원사(大原寺) 장흥 보림사 보성 차밭
- 최초 등록일
- 2024.02.23
- 최종 저작일
- 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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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보성 장흥 개관 서재필선생 기념공원 대원사(大原寺) 장흥 보림사 보성 차밭"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보성·장흥 개관 2
Ⅱ. 서재필선생 기념공원 4
Ⅲ. 대원사(大原寺) 8
Ⅳ. 장흥 보림사 17
Ⅴ. 보성 차밭 27
Ⅵ. 벌교 홍교 32
본문내용
Ⅰ. 보성·장흥 개관
장흥은 전라남도 남쪽 바닷가에 있다. 그 서쪽에 강진이 있고 동쪽에는 보성이 있으며 북으로는 화순과 영암이, 남쪽 바다 건너에는 완도군이 있다. 이제는 길이 많이 뚫렸지만, 장흥은 산지가 많은 곳이라서 오랫동안 교통의 오지를 면하지 못했었다.
백제 때 이 지역은 오차현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 때는 오아현이 되어 이웃 보성군에 속했으며 고려 초에는 정아현으로 이름을 고쳐 북쪽의 영암군에 속했었다. 오늘날과 같이 장흥이라는 이름을 갖고 부로 승격된 것은 고려 인종 때, 인종의 왕비인 공예태후 임씨의 고향이 이곳 관산면 방촌리였던 덕분이었다. 이후 고려 원종 6년(1265)에는 회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충선왕 2년(1310)에 다시 장흥부로 돌아왔다.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에는 거주민이 모두 북쪽의 다른 지방으로 옮겨갔고 한때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조선시대로 들어와 태조 1년(1392)에 수령현의 중녕산에 성을 쌓고 치소로 삼았고 태종 13년(1413)에 장흥도호부로 되었으며 세조 때 진이 설치되었고 고종 32년(1895)에 군이 된 이래 지금에 이른다.
장흥에서 산을 꼽으라면 천관산이요, 강을 꼽으라면 탐진강이다. 천관산에는 신라 때 통령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오는 천관사가 있고, 이름 그대로 하늘의 관을 쓴 듯 바위가 비죽비죽 솟구친 정상에 오르면 남해가 굽어보인다. 천관산 북쪽의 관산읍은 예전 장흥의 치소가 있던 곳인데 남쪽 방촌리로 가는 언덕 길가에 돌장승 두 기가 서 있다. 방촌리는 고려 인종의 비 공예태후의 고향이기도 했고, 조선조 정조 때 왕에게 『만언봉사』를 지어올린 실학자 위백규를 낳은 위씨 마을이기도 하다.
탐진강은 장흥 북쪽 가지산 어름에서 시작되어 여러 물줄기를 합쳐 장흥읍을 지나면서 북쪽 구부러진 후 서쪽으로 구부러져 강진만으로 흘러든다. 탐진강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하천 언저리의 충적평야와 남쪽 해안지방의 간척지가 장흥 땅의 농사터이다.
탐진강 상류인 가지산 남쪽에는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파의 중심도량이던 보림사가 있다. 탐진강을 말하면서 갑오동학 전쟁의 마지막 싸움이었던 장흥전투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