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와 군현제
- 최초 등록일
- 2019.11.08
- 최종 저작일
- 2018.10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봉건제와 군현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봉건제는 중세 유럽에서 봉토수수에 의해서 성립되었던 지배계급 내의 주종관계, 또는 씨족적∙혈연적 관계를 기반으로 했던 주나라의 통치조직을 말한다. 봉건제의 봉건이란 토지를 봉하여 나라를 세운다라는 의미이다. 봉건제는 사회, 경제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고 또 그 환경에 의해 변화되지만, 사회적 또는 경제적 제도가 아니라 원래는 통치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또한 봉건제는 그 본질적인 관계가 지배자와 예속자의 관계가 아니며 또 국가와 시민과의 관계도 아니며 주군과 봉신 사이의 관계를 본질로 하는 통치의 한 수단으로서 잠정적으로 정의된다. 엄격히 정치적인 면에서 본다면, 중국의 역사에서는 봉건적 또는 유사 봉건적인 현상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주요한 시기는 단지 두 시기뿐인데, 일반적으로 주 왕조와 기원후 221-589년의 시기가 이에 해당한다. 한의 멸망은 분열의 시대를 열었고, 이 분열의 시대는 다시 수와 당 왕조들 하에서 중앙 집권화한 제국이 재확립됨에 따라 봉건제도 몰락하게 된다. 이 중에서도 더 뚜렷한 형태를 띠었던 주나라의 봉건제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주나라의 봉건제는 보통 주왕의 책봉을 받고 요충지에 제후국을 설치함으로써 실시되었다. 먼저 주나라의 무왕이 목야전투에서의 승리를 통해 상나라를 엎은 이후 정복한 땅을 대규모로 분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무왕은 상의 유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상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의 아들 무경을 상의 도읍인 은에 머무르면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는데에서 기원되었다. 두번째로는 무왕의 동생이었던 주공의 섭정과 동방 대원정을 통해 얻은 토지를 제후들에게 분봉하였는데서 기원하였다. 주공은 무왕이 죽은 후 어린 성왕이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였고 이에 불만을 품었던 무왕의 동생들이 상의 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3감의 난이라고 한다. 주공은 3감의 난을 진압 후 새로운 점령지에 정치 군사 요충지 중심으로 주족 및 동맹부족을 분봉하여 배치하였다.
참고 자료
신채식, 『동양사개론』, 삼영사, 2009년, p51-59, p74-75, p79-82, p127-129
신성곤,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004년, p36-38
러쉬튼쿨본, 『봉건제의 이해』, 민음사, 1996년, p91-149
강길중, 『중국의 역사와 문화』, 경상대학교출판부, 2013년, p43-44
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 http://waks.aks.ac.kr/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
열국연의 http://www.yangc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