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야 고분군의 실체를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20.12.29
- 최종 저작일
- 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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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가야 고분군의 실체를 찾아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송학동 고분군(사적 119호)은 일본과의 교류가 빈번했던 7공주의 묘?
2. 자연그대로의 옛 모습을 갖춘 내산리 고분군(사적 120호)은?
3. 소가야? 쇠의 가야? 왜 자기가 사는 나라를 낮춰 작은 나라라고 불렀던것일까?
본문내용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영생도 있지만 이것은 단지 종교적 관념일 뿐이다. 하지만 죽음은 왕성한 사유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고, 주검을 수렴하는 무덤들이 창출되면서 이를 사후세계의 안식처로 인식하게 되었다. 비록 무덤이 사후세계를 위해 사람들이 기울인 노력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많은 고고학자들과 역사적 산물로서는 과거 사람들의 의식세계가 어떠한가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사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분들을 통하여 피장자의 정치적, 사회적 위치를 잘 나타내며 당시의 매장 관념과 함께 시대상, 사회상 등도 함께 반영하고 있는데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 발전하고 지역에 따라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오늘 이 유적지 조사를 하게 됨으로써 내 고장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이런 우리 고장의 유적지들 중 한 가지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뿌듯한 기분이 든다. 모든 유적지를 다 소개하고 싶지만 그 중에서도 삼한시대의 이 지역을 대표했던 유적지로로 읍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송학동 고분군(사적 119호)과 동해면 내산리 고분군(사적 120호)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