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과잉교육화 문제
- 최초 등록일
- 2005.03.17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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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머리말.
2.과잉교육현상의 역사적 전개.
3.고용구조의 변화.
4.과잉교육화의 사회경제적 결과.
5. 맺음말
본문내용
2. 과잉교육현상의 역사적 전개.
과거 주로 소수 특권층 자제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던 교육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한말 개화기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교육방침은 원칙적으로 일어보급을 위한 보통학교 교육과 실업교육에 치중하는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였다. 따라서 일제의 교육방침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을 완화시키기 위한 유화책에 불과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일제의 고등교육정책이 사회지배층으로의 편입된 것이라는 점이다. 곧 그 목표에 있어 가치 지향적 교육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경성제대 출신자들의 대다수 졸업 동향을 보면 식민정부의 각급 행정기관, 조선은행, 농혐 등의 금융기관과 소학교, 중학교 등의 교육기관 및 관영공장과 병원 등에 취업하였음을 알수 있다.
더불어 우리는 상기 기관들이 대부분 국영 내지 공영이며, 이들 국·공영 사업체의 사무관리직에는 일본인도 상당수 고용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임금은 일본 내 동급 근로자들의 임금수준보다 오히려 높게 책정된 것이 통례였고, 따라서 사무·관리직에 종사하는 한국인 고학력자들에게는 이들 일본인의 임금 수준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임금이 할당되었다 한다. 반면 생산·기능직에 종사하던 대부분 한인 무학력·저학력자들은 일본인 생산노동자의 약 1/2에 해당하는 저임금이 강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결국 식민통치의 기본전략인 분할지배의 논리가 우리 노동시장에 적용되어 고학력자와 저학력자의 임금격차를 생산성 이상으로 확대시켜 놓았음을 의미한다.
해방 후에는 미국적 제도의 도입으로 교육의 기회균등이나 민주교육이라는 목표 아래 단선형 학제가 시행되었고, 이것은 결국 사회적 여러 조건들이 미비한 가운데 잠재적 교육욕구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