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의 이해] 한국연극운동사
- 최초 등록일
- 2004.12.18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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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연극운동사책 내용을 3부부터 7부까지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제3부 민족자각과 민중연극
제4부 암흑과 혼돈의 연극
제5부 전쟁과 연극기반의 붕괴
제6부 연극재건의 험로
제7부 산업사회와 연극다양화
본문내용
[창조]지를 중심으로 한 문학 동인지가 서울, 대구, 평양을 중심으로 생겨날 때 [조선], [동아] 양대 민족 신문이 창간됨으로써 문예운동은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각계의 신기운은 연극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기성연극인들은 반성과 함께 새시대에 대비한 준비를 서둘렀고, 기성연극의 낡음에 식상한 신진 연극지망생들은 서양 근대극의 직수입을 서투르나마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바로 1920년대 초의 연극계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반성하면서 새 채비를 하는 구태와 아마추어적인 새싹이 연극계를 서서히 양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초창기로부터 연극을 해온 사람들도 일본식 신파극에 절은 연극인과, 3.1운동 이후에 등장했으면서도 보수적인 현철, 김정진과 같은 기성연극인으로 다시 나뉘어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파에 절은 구태의연한 연극인들은 3.1 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 극단들인 신극좌, 취성좌, 혁신단 등을 그대로 지속시켰고, 윤백남, 이기세 등 인텔리 신파 연극인들은 예술협회, 민중극단 등을 새로 만들어 개량신파를 시도했던 것이다. 신파극도 낡은 것과 새 것으로 나누어진 셈이다. 그리하여 같은 신파극이라도 감각이 낡은 극단들은 유랑극단화되어 지방으로 밀려났고, 개량 신파극단 두세 개만이 서울을 근거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다니는 동안 널리 알려져서 여배우 지망생도 하나둘 굴러들어 왔다. 1920년대 예원을 장식했던 이월화, 복혜숙, 이채전 등도 신파로부터 출발한 여배우들이었다.
참고 자료
한국연극운동사 -유민영(태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