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한국통사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3.05.04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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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한국통사의 서술 배경 및 내용
Ⅱ. 한국통사 서설 요약
Ⅲ. 대내외적 영향
Ⅳ. 나의 느낌
본문내용
한국통사는 그가 1914년에 상하이로 돌아와 국시일보(國是日報)의 주간으로 활동하면서 집필하여 1915년에 역시 상하이에서 처음 발간된 저서이다. 한국통사는 간행 직후부터 중국, 연해주, 미주의 한인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었고, 국내에도 비밀리에 적지 않은 부수가 보급되었다. 1910년 이후 일제가 국내의 모든 신문, 잡지, 언론 기관을 폐쇄할 때, 박은식의 모든 저서를 금서로 지정하고 발간과 독서를 엄금했음을 고려한다면, 한국통사의 그러한 보급은 무척이나 위험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서문에서 그는 집필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는 멸망할 수 있으나 그 역사는 결코 없어질 수 없다고 했으니, 이는 나라가 겉모양이라면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나라의 모양은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정신은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집필하는 것이다.'
한국통사의 체제는 범례·목록·서·서언·삽화·제 1 편 2장·제 2 편 51장·제 3 편 61장·결론·후서·발 등으로 되어 있다. 본문은 3편 114장으로, 1864년 고종 즉위로부터 1911년 105인사건 발생까지 1947년 동안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하고, 중요부분은 각 장 뒷부분에 저자의 의견을 덧붙였다. 제 1편은 서설편으로, 지리 및 역사의 대강을 긍정적인 사실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제 2편은 대원군 섭정에서 대한제국 성립 직전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대원군의 세도정치 척결과 내정 개혁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국제세계에 어두워 쇄국정책을 폄으로써 한국이 중흥할 기회를 잃었으니 통사는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또한 갑신정변에서 일본이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개화당이 성공하면 한국이 크게 발전할 것으로 우려하였기 때문이라 보았다. 제 3편에서는 대한제국 성립 뒤 105인 사건까지의 사실을 서술하였다. 국권상실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필자가 투철한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통사로서의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근대사를 가장 먼저 종합적으로 서술한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1915년 간행된 초판본은 현재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1946년 삼천각(三千閣)에서 출간한 책이 유포되어 있으며, 1975년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동양학총서 제 4집으로 간행한 《박은식전서》 3권 가운데 상권에 초판본이 영인·수록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