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 사마천의 사상

등록일 2002.12.11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짧지만 영양가 있는 자료!

목차

1. 사마천(司馬遷)의 생애
2. 『사기』에 드러난 사마천의 의식
3. 나오며
4. 조사를 마치고


본문내용

사마천의 생몰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오늘날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은 그가 기원전 145년, 한제국(漢帝國)의 황제(皇帝)시대에 태어나서 기원전 86년, 즉 소제시대에 죽었다는 설이다. 두 황제의 제위 기간은 각각 사마천의 유년시절과 만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마천이 실제로 활동한 기간은 무제시대이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무제의 조정에서 태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던 사람으로 천문과 달력편찬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관리로 그 시대에는 별로 존중받지 못하는 직책이었다. 그러나 사마담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태사의 본래 기능이요, 명예로운 의무라고 믿고 임종할 때 눈물흘 흘리면서 아들 천에게 태사로서의 의무를 다하기를 부탁하였다. 실제로 사마천은 아버지가 죽은 후 태사가 되었고 공무를 수행하면서 아버지가 모아 둔 자료를 정리하여 『사기(史記)』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원전 99년 이릉(李陵) 사건이 일어났다. 한제국은 몽고 지방에 살던 흉노족의 침공을 자주 받았는데 무제는 적극적인 공세로 그들을 정복하려 했다. 이릉은 무제가 흉노 정복을 위해 파견한 원정군의 한 부대장으로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다 지원군이 오지 않아 항복했다. 무제와 신하들은 이릉을 비난했으나 사마천은 혼자 이릉을 변호하였다. 무제는 천자를 비방했다는 죄명으로 사마천을 투옥하고 궁형(宮刑)을 명령했다. 남성을 거세해 버리는 궁형은 사마천 생존 당시, 사형수도 그것을 원하면 그것으로 목숨을 살려 주었다는 형벌로 매우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것이었다. 사대부의 경우는 이 형벌이 대체로 죽음 뜻했는데 형을 받은 사람은 치욕에 못 이겨 자살하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마천의 나이 48세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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