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향명은 이 책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나, 특히 附錄의 '方中鄕藥目草部'에 가장 많이 실려 있다. ... 방언에는 "天曰漢 "와 같은 한자로 당시 국어 단어 또는 어구 350여항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러모로 보아 孫穆이 고려에 와서 직접 기록한 것임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2) 鄕藥救急方
『鄕藥救急 方』의 漢字體系가 금석문과 고문서에서의 借字體系를 대체적으로 受用했으나 부분적인 變 化가 눈에 뛴다. ... 그런데 『鄕藥救急方』에서의 借字表記와 15·16세기에 나오는 借字表記를 서로 比較해 보면 表記의 正確性을 높이는 쪽 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 다만 이 改名 작업이 人爲的으로 시행되었고 固有地名을 버리고 漢字式으로 교체한 것이 많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13세기 중엽의 우리말을 반영한 자료로 『鄕藥救急方』이 널리 알려져
이들 향명은 이 책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나, 특히 附錄의 方中鄕藥目草部 에 가장 많이 실려 있다. ... 이 방언에는 天曰漢 와 같은 한자로 당시 국어 단어 또는 어구 350여항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러모로 보아 孫穆이 고려에 와서 직접 기록한 것임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2) 鄕藥救急方
그 중에서 중요한 업적으로는 세종의 민족문화건설의 일환으로 세종 15년에 鄕藥集成方 85권을 편찬하여 고려 후반기부터 권장해 오던 향약에 관한 서적들을 집대성시킨 것이다. ... 겸해서 鄕藥濟生集成方 30권을 편집하였으며 지방 醫療 기관으로 의원이 설치되었다 또한 태종 6년에 의녀 제도가 제생원에 설치되었는데, 그 이유는 부인들이 병이 있을 때 남의에게 진찰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