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후기 중세국어 前期中世國語 資料 전기 중세어의 중요한 문헌 자료로는 鷄林類事와 鄕藥救急方이 있다. ... 鄕藥救急方은 우리나라의 오랜 의약서 중의 하나다. 이 책은 13세기 중엽 고려 대장경을 찍은 대장도감에서 간행되었는데 초간본은 전하지 않고 태종 17년의 중간본만이 전한다.
향약의술의 발전은 조선왕조 건국 후에도 국가적 차원에서 계속 되었고, 세종 16년(1434)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의 편찬과 간행으로 빛을 본다. ... 이러한 조선시대의 인구증가는 고려시대 13세기 중반부터 토산 약재를 사용하는 향약의술(鄕藥醫術)의 발달과 이에 따른 소아 사망률의 감소에 힘입은 결과이다.
- 의료제도가 정비되고 체계화, 전문적으로 科가 나뉘어 있어 과거 과목에 外科 있었음 - 3차에 걸친 거란군과 몽고와 외적의 침략으로 인해 군대에 醫師를 배치 - 고려 말기의 ... 외과수술이 실용되었고, 고려 말에는 外科, 皮科, 性病科로 분리 4) 근세(조선시대) - 外科學의 분과는 針灸醫, 醫, 治腫醫으로 정하여 針灸醫를 외과의 일부분으로 다룸 - 1433년
이것은 鄕藥集成方에 나오는 ‘馬無乙串/?물웃(山慈菰根)’의 ‘無乙串’이 역시 (A)계열로서 球根類인 점을 고려하면 그 의심을 짙게 한다. 그러나 ‘?汝乙/마? ... 拙著(1981, p.89)에서는 鄕藥救急方에서 薯?와 같이 肉質根類를 나타내는 고유어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여 소개한 바 있었다. (1)모? : 毛立(芋), 雉矣毛立? ... 鄕藥救急方의 ‘?支(?)’는 mat이거나 여기에 접미사 ‘-i’가 첨가된 것일 것이다. 消衣??松衣?의 ‘?’로 보아 13세기에는 語末의 ‘t’가 변화를 입었을 것임에도 支(?)
고려 고종 23년(1236)에 펴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숭 (?)''을 배추라 하고 순무와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 흠이 없어야 하며, 신선하고 윤이 나며 육질이 단단하면서도 연하고, 매운맛이 적고 단 것이 좋다. 3)파 우리나라에 파가 들어온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시대 문헌인 ‘향약구급방(鄕藥救
디프테리아에 해당되었을 병명은 현존 최고(最古)의 의서인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 상권 후비문 중에, 전후풍·급후폐·마후비 등의 병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 조선시대의 여러 의서들에 이 디프테리아에 해당되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1433년에 발간된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 1610년 ≪동의보감≫, 1749년 ≪급유방 及幼方≫, 1790년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의학서로는 세종조의「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의방유취(醫方類聚)」가 있다. ... 때문에 국내의학의 발전은 중요한 과제였으며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은 향약(鄕藥)에 깊은 관심을 가져 향약연구의 절정을 맞이하였다. ... 이미 태조 7년(1398)에 김희선과 권중화 등이 그간의 의료 경험과 종래의 의약서 등을 참고로 하여「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30권을 간행하여서 이것이「향약집성방」의 토대가
여섯째, 이 책은 애민(愛民) 정신에 의한 민족 의학 사상과 향약(鄕藥) 정책에 의한 민중 의학 사상 및 양생법에 의한 예방 의학 정신을 담고 있다. ... 둘째, 향약(鄕藥 우리 나라의 약 재료와 그것으로 만든 약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이 용과 보급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위해 향약 중 640개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여 쉽게 이용 토록
이기문과 김무림 모두 『鄕藥救急方』과 『鷄林類事』의 기록을 토대로 하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이기문은 『鷄林類事』에서 “弟曰 了兒”(아?) ... 강길운도 중세 전기 국어에서 반치음'ㅿ'은 분명히 쓰였다는 견해를 밝혔는데, 역시 그 근거를 『鷄林類事』와 『鄕藥救急方』의 표기에서 두고 있다. '弟曰?兒ㆍ四十曰麻? ... 『鷄林類事』에 있어서의 'ㅸ'의 존재 여부는 『鄕藥救急方』에서의 경우와 큰 차이가 없음을 들면서 역시 다음과 같은 표기로부터 중세 전기 'ㅸ' 존재의 가능성을 짐작하였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