煉 달굴 련 屢 여러 루 途 길 도 鄧 나라이름 등 憐 불쌍히여길 련 漏 셀 루 桃 복숭아 도 ㄹ 練 익힐 련 樓 다락 루 悼 슬퍼할 도 裸 벗을 라 聯 연이을 련 柳 버들 류 陶 ... 차 天 하늘 천 總 다 총 池 못 지 捉 잡을 착 泉 샘 천 最 가장 최 地 따 지 着 붙을 착 淺 얕을 천 催 재촉할 최 志 뜻 지 錯 어긋날 착 踐 밟을 천 崔 성/높을 최 知
王維와 孟浩然 모두 陶淵明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謝靈運의 영향도 조금씩 받았다. 특히 孟浩然이 王維보다 좀 더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중? ... 舊不迷, 스스로 가본 옛길 헤매지 않으리라 생각하였건만, 安知峰壑今??. 어찌 알았으랴! 봉우리와 골짜기 이제 모두 변해 있을 줄. 當?只? ... 知有人事, 이 협곡 속에 인간의 삶 있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世中?望空雲山. 속세에서 아득히 바라보면 단지 구름 덮인 산분일 걸. 不疑靈境???
何以稱我情 무엇으로 내 마음 달래리오 , 濁酒且自陶 탁주로 잠시 혼자서 즐기네 . 千載非所知 천년 뒤야 내 알 바 아니니 聊以永今朝 오늘 아침이나 길이 즐겨보려네 . ... 나의 집안 역시 청렴하다네 고결함의 상징 己酉歲九月九日 陶淵明 靡靡秋已夕 모르는 새 가을 이미 저물고 淒淒風露交 처량하게 바람 이슬 번갈아 이네 .
니잇고 劉伶陶潛 兩仙翁의 劉伶陶潛 兩仙翁의 위 醉혼ㅅ 景 긔 엇더?니잇고 5. 紅牧丹 白牧丹 丁紅牧丹 紅芍藥 白芍藥 丁紅芍藥 御柳玉梅 黃紫薔薇 芷芝冬柏 위 間發ㅅ 景 긔 엇더? ... 그리고 고종 4년에는 이규보가 우사간지제고(右司諫知制誥)가 되어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 받았으니, 이로 보아 이 노래는 고종초의 2, 3년경의 작이라고 추측₁₁)할 수 있다.
而朝中多畏鐵公, 恐成了大功, 爲帝所柄用, 又極力於暗中謀沮, 建文帝只命鐵公扼住濟南中路, 燕王遂由大名繞出館陶, 徑趨徐泗而下金陵。 ... 令釋縛曰:“卿之忠義, 朕所素知。” 연왕이 아직 철위공을 항복시켜 사해 선비와 백성의 바람을 위로하려고 빨리 포박을 풀게 하여 말했다. “경의 충성과 의리를 짐이 평소 압니다.” ... 鐵公背立罵曰:“反賊逼死我君, 焉知忠義?速求東宮奉立爲帝, 庶可免高皇之?。” 철공이 등에 서서 욕하며 말했다. “반란역적이 핍박해 내 군주를 죽게 했는데 어찌 충성과 의리를 아시오?
넉 사 時:때 시 之 功:공로 공 也 ③ 水:물 수 陸:육지 륙 草:풀 초 木:나무 목 之 花:꽃 화/可:옳을 가 愛:사랑 애 者:사람 자 甚:심할 심 繁:많을 번/而:말이을 이 陶: ... 在:있을 재 我:나 아 力:힘 력 行:다닐 행 而:말이을 이 不:아닐 불 已:이미 이 也:어조사 야 /人:사람 인 非:아닐 비 學:배울 학 問:물을 문/固:굳을 고 難:어려울 난 知:
可人 다시 속세에 끌려 나를 등진다면 更惹塵機來負我 누구와 또 친할까 알지 못하겠네 不知誰復與相親 풍류가 후조당당의 봄에도 얕지 않으니 騷情非淺後凋春 고절의 그대는 주인을 의심치 말라 ... 盆梅答 말 들으니 도선도 우리마냥 쓸쓸한 이, 聞說陶仙我輩? 임 가실 때를 기다려 천향을 풍기리다. ... 이것이 조선조 賜額書院의 시초가 된 紹修書院이다. 1년 후 퇴임하였다. 60세(1560)에 陶山書堂을 짓고 아호를 ‘陶翁’이라 정했다.
세월불대인(歲月不待人) 1)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2)도연명陶淵明)의 잡시(雜詩)에서 나옴. ... 일엽지추(一葉知秋) 1)나뭇잎 하나가 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줄을 알다. ... 어떤 사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알아볼 필요는 없다. 2)원문: 산승불해수갑자(山僧不解數甲子) 일엽락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 - 산 속의 중은 나뭇잎 하나 떨어짐을 보고 온
그는 사퇴했지만 여러 차례의 돈독한 소명을 물리치기 어려워 마침내 68세의 노령에 대제학·지경연(知經筵)의 중임을 맡고, 선조에게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를 올렸다. ... 상권의 내용은 지행합일론(知行合一論) ·심즉리설(心卽理說), 《대학(大學)》의 신해석 등이고, 하권은 치량지설(致良知說) ·만가성인론(滿街聖人論) 등을 중심으로 하여 널리 제자와 ... . ●12세에 작은아버지 이우(李)로부터 『논어』를 배웠고, 14세경부터 혼자 독서하기를 좋아해, 특히 도잠(陶潛)의 시를 사랑하고 그 사람됨을 흠모하였다. 18세에 지은 「야당(野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