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조선후기의 예술가 정선과 김홍도
- 최초 등록일
- 2007.06.14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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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술 수행 평가 자료입니다.
조선후기의 화가 정선과 김홀도에 대해 정리하고
그림을 한 점씩 소개하였으며
둘의 차이에 대해 비교해 보았습니다.
목차
Ⅰ. 조선후기의 예술가 정선과 김홍도
1. 겸재 정선 (鄭敾/1676∼1759)
2. 단원 김홍도
Ⅱ. 정선과 김홍도의 작품보기
1. 정선의 금강전도
2. 김홍도의 금강전도
Ⅲ. 정선과 김홍도의 비교
본문내용
Ⅰ. 조선후기의 예술가 정선과 김홍도
겸재 정선 (鄭敾/1676∼1759)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호는 겸재(謙齋)·난곡(蘭谷)이다.
약관에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고 그 뒤 현감을 지냈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하여 조선 산수화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의 진경화로 전환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심사정·조영석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리었다.
강한 농담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로 하여 암벽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단절되었다. 문재(文才)가 없었으므로 다만 서명과 한두 개의 낙관만이 화폭의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저서에 <도설경해(圖說經解)>가 있고 그림 작품으로는 <입암도(立巖圖)>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 등이 있다.
단원 김홍도 (金弘道/1745~1805년 사망년도 추정)
본관은 김해이며, 호는 단원(檀園)이다.
김홍도는 7∼8 세부터 20여세까지 이곳 안산에서 표 암 강세황(豹庵 姜世晃) 선생으로부터 그림과 글 수업 을 받았으며 그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이렇 게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여주었던 단원 김홍도는 후에 어진화가(御嗔畵家)로 대성하여 그 명성을 전국에 떨쳤던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로 이름이 드높다. 김홍도는 풍속화를 잘 그리기로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남종화, 평생도, 신선도, 풍속화, 진경 산수, 초상화 등 전반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산수화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김홍도의 산수화 배경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남종화풍(南宗畵風)의 운치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과 함께 우리 산수풍속(山水風俗)의 서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그가 44세 되던 해에 정조의 명을 받고 복헌 김웅황과 함께 금강산에 있는 4개군의 풍경을 그린 것을 계기로 하여 그의 독자적인 산수화를 확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