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시대 역사가와 과거청산
- 최초 등록일
- 2007.01.27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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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나치시대 역사가> 논쟁
2. 나치시대의 ‘평범한’ 역사가?
3. 정치적 전환과 학문적 연속성
4. 학문적 청산의 내적 ․ 외적 요인
5. 맺음말
본문내용
1. <나치시대 역사가> 논쟁
1998년 가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제42차 독일역사학대회를 뜨겁게 달군 ‘나치시대 역사가’에 관한 논쟁은, 피셔논쟁(Fischer-Kontroverse) 이래 최고의 논쟁이었다는 평이 나돌 정도로 격렬했고 감정적이었으며 또 그만큼 정치적이었다. 게다가 이 논쟁은 여론의 주목, 견해의 대립, 그리고 청중의 반응이라는 논쟁의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나치와 관련된 격렬한 논쟁을 이미 수차례 경험했던 독일 역사학계가 이날 또 다시 이처럼 떠들썩한 논쟁에 휩싸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 논쟁의 도마 위에 오른 사람이 다름 아닌 베르너 콘체(Werner Conze)와 테오도르 쉬더(Theodor Schieder)였기 때문이었다. 전후 독일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이 두 역사가가 바로 나치에 ‘부역한’, 문제의 역사가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구조사(Strukturgeschichte) 및 사회사(Sozialgeschichte)라는 새로운 학풍을 선도하면서 벨러(Wehler), 코카(Kocka), 몸젠(Mommsen) 등 현재 독일 역사학계의 저명한 인물들을 길러낸 장본인이었다.
이들 이외에도 그동안 나치부역의 혐의로 인해 논쟁에 연루된 역사가나 학자들은 많았다. 법학자 슈미트(Carl Schmitt)와 철학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같이 널리 알려진 인물들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서라도, 1990년대 중반에는 역시 독일의 대표적인 역사가였던 오토 브룬너(Otto Brunner)나 에르트만(Karl Dietrich Erdmann)이 나치에 부역한 혐의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또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아헨(Aachen)공대의 독문학 교수였던 쉬베르테(Schwerte)가 원래는 나치당원이자 SS에 소속된 쉬나이더(Schneider)였음이 최근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이제는 콘체와 쉬더의 스승이자 유대인 출신의 역사가였던 한스 로트펠스(Hans Rothfels)가 나치시대 역사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문제로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