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의 활동과 실패
- 최초 등록일
- 2006.11.08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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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반민특위의 활동과정과 실패원인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 서 론
- 본 론
1. 미군정의 친일파 기용
2.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정
3. 반민특위의 활동
4. 반민특위의 해체
5. 반민특위의 실패원인
- 결 론
-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 서 론
대한민국 근 ˙ 현대사는 우리 민족 역사상 최대의 시련기이자 격변기였다. 우리나라는 조선후기 이래 추진해온 자주적인 근대화운동을 바탕으로 근대민족국가를 수립하려 하였지만 우리보다 한 세대 앞서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후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할 시기에 미국과 소련의 지배로 민족이 분열되고 국토가 두 동강이 나며 분단국가가 되었고 사상의 차이로 3년간의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같은 민족이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증오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우리 민족에게 고통과 수난을 강요한 식민지, 분단체제가 형성된 가장 큰 원인은 제국주의의 침략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무려 35년간이나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았으며 해방 후 분단체제가 형성되고 60년이 넘게 유지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일제의 침략과 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협력한 반민족 세력이 있었다. 이들 반민족세력은 일제 시기에는 ‘친일파’였으며 해방이후 분단체제 하에서는 ‘극우반공세력’이었다. 이 두 집단은 서로 다른 집단이 아니었다. 극우반공세력의 핵심은 해방 후 친일세력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동일집단이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일제식민체제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을 암울한 식민체제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일본은 오히려 패전 후 민주화 과정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계속하면서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반면, 소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일제가 남겨준 식민잔재를 거론하고 있는 처지이다. 그 대표적인 식민잔재가 바로 친일파들이다.
친일파의 처리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친일파의 처벌이라는 원칙에는 모두가 찬성하지만, 처벌대상이 되는 친일파의 범위에 있어서는 정당 · 지역 · 계층 · 단체 마다 입장차이가 다르다. 이 문제는 해방 후 친일파 처리문제가 제기된 이후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민족반역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언어가 역사성을 가진다고 할 때 우리 역사의 어느 시대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초역사적인 개념이다. 하원호, 2000 『한국근현대사와 친일파 문제』, 아세아 문화사, 177p.
참고 자료
1) 김남웅, 1995 「반민특위 : 발족에서 와해까지」,
가람기획.
(2) 길진현, 1984 「역사에 다시 묻는다」, 삼민사.
(3) 안진, 1996 「미군정기 억압기구연구」, 새길.
(4) 이강수, 2003 「반민특위 연구」, 나남출판.
(5) 이기동, 1982 「비극의 군인들」, 일조각
(6) 정용욱, 1996 「1942 ~ 19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구상형태」,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7)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1996 「미군 CIC 보고서」.
(8) 하원호, 2000 「한국근현대사와 친일파 문제」,
아세아 문화사.
(9) 허 종, 2003 「반민특위의 조직과 활동 」, 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