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분단시대 남한의 한국사학
- 최초 등록일
- 2005.12.11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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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분단시대 남한의 한국사학에 대해 시대별로 나누어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1950년대의 한국사학 - 재건을 위한 준비
2. 1960년대의 한국사학 - 식민사관 비판과 내재적 발전론의 대두
3. 1970년대의 한국사학 - 내재적 발전론의 심화
4. 1980년대의 한국사학 - 역사관의 분화
5. 맺음말 - 한국사학의 과제와 전망
본문내용
20세기 후반 남북한의 역사학은 후일 ‘분단’이라는 시대적 상황하에서 산출된 ‘분단시대의 역사학’ 으로 규정될 것이다. 그러나 분단시대의 역사학은 멀리 조선후기의 역사학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19세기 말~20세기 전반에 근대화와 외세 침략의 와중에서 성립, 발전해온 한국 근대사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이며, 앞으로 통일 이후에는 다시 하나로 통합된 역사학으로 발전해갈 것이다. 따라서 남한의 역사학도 이제 통일을 전망하면서 나름대로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역사학으로 탈바꿈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 글에서는 본격적인 분단 시대라 할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남한의 역사학이 어떠한 발자취를 밟아왔는가를 각 시기별로 정리하고, 앞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역사학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서술하였다.
1. 1950년대의 한국사학 - 재건을 위한 준비
1948년 남북한 분단정부의 수립과 6.25전쟁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였고, 역사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지식인들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45년부터 48년 사이에 이미 대부분의 맑스주의 역사학자들이 북으로 자리를 옮겨갔고, 남한에 남아 있던 소수 맑스주의자들도 6.25전쟁의 와중에 흽쓸리면서 더 이상 남한에 남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 6.25전쟁은 그동안 중도적인 입장을 지켜오던 많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설 땅을 잃게 하였다. 이들 중도적인 지식인들의 다수는 북한정권에 의하여 납북되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제창했던 손진태(孫晋泰), 이인영(李仁榮) 등이 들어 있었다. 결국 남한의 역사학계는 분단과 전쟁과정을 통하여 전반적인 재편과정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로써 남한에는 기존 학자들 가운데에서 문헌고증사학자들만이 남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