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김창협
- 최초 등록일
- 2005.07.14
- 최종 저작일
- 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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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농암 김창협(1651-1708)은 17세기의 대표적인 도학자 중에 한 명이며, 문장이 뛰어난 文人이었다. 그는 환국정치로 거듭되는 정변 속에서 父 金壽恒이 죽임을 당하자 관료의 길을 단념하고 초야에 묻혀 처사의 삶으로 일관하였다. 이에 학문의 탐구와 후학의 계도에 전념하여 사상과 문학에서 一家를 이루었다.특히 그는 당대의 허식적이고 혼탁한 문장을 바로잡고자 古文運動을 주도하여 문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전범을 제시함으로써 후대 문인들에게 많은 주목을 끌었다. 김태준의 한문학사에 언급된 “그의 아우 金昌翕이 시에 뛰어났음에 비해 농암은 문장이 훌륭했다” 金台俊 『朝鮮漢文學史』(朝鮮語文學會, 1931)
는 지적이 문장에 대한 그의 업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농암 산문에 대한 탐색으로 朴斗遠이 농암의 文論을 대상으로 농암 古文의 一端을 밝혔는데. 주로 당대의 의고주의 문풍에 반대했던 反擬古性, 時代性을 강조한 문장의 구현, 다양한 표현의 추구 등을 농암 고문의 특징으로 규명했다.농암은 문장 창작에 있어서 고인을 모방하지 않고 작가의 개성이 실린 독창적인 내용을 담아야 진정한 문장이 된다고 인식하여 반의고문적 작문론을 제시하였다. 고인을 배우되 고인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며 이러한 태도로 문장을 지어야 진실한 문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문장이란 시대의 산물이므로 그 시대의 정신에 맞는 시의성이 있는 문장을 지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문장에서 개성과 시의성을 강조한 그 주장은 한문사대가들의 고문 정신을 충실하게 계승하여 체계화한 것으로 간주된다. 농암은 문장 창작에서 구성상의 簡嚴한 체재를 중시하였는데 특히 사적인 동기로 창작되는 비지문에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대상 인물을 지나치게 칭송하여 구차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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