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장준하
- 최초 등록일
- 2005.04.06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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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요약
2. 연보로 보는 삶
1) 어린 시절
2) 광복군 시절
3) 사상계(思想界)시절
4) 민주화 운동 시절
5) 돌아가신 이후
<참고자료> 박정희와 장준하
본문내용
언론인·정치인. 평안북도 의주(義州) 출생.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예과를 거쳐 니혼신학교[日本神學校]를 다니다가 1944년 학도병으로 중국에 파병되었으나 6개월 만에 탈영, 린취안[臨泉]의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이곳에서 《등불》 《제단(祭壇)》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고, 45년 임시정부주석 김구(金九)의 비서로 귀국, 46년 조선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교무처장을 지냈다. 52년 창간된 백낙준(白樂濬) 발행의 《사상(思想)》지를 인수하여 53년 부산에서 월간 《사상계(思想界)》로 재창간하였다. 66년 <국가원수모독죄>로 복역 중 서울 동대문을구에 신민당 공천으로 옥중 출마하여 제 7 대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71년 신민당 탈당 뒤 《사상계》 사장에 복귀하였다.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을 벌이고, 74년 12월 긴급조치 제 1 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된 직후 75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였다. 민주회복국민회의를 통해 범민주세력 통합에 힘쓰다가 같은 해 8월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이동면(二東面) 약사봉 등산길 벼랑 아래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1962년 한국 최초로 막사이사이상 언론부문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돌베개》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