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교과서의 한반도 관련 고대사 서술
- 최초 등록일
- 2011.01.20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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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대사에 대한 서술이 중국과 일본의 시각차를 나타내는 레포트입니다.
잘 활용하여 했으면 좋겠고, 이걸로 A+정도 한 레포트니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목차
1) 중국 교과서
2) 일본 교과서
3) 결론
2) 일본 교과서
후소샤 - 조공, 야마토 조정의 자신
일본서적 - 신라의 조선통일
3) 결론
본문내용
1) 중국교과서
<한과 조선, 일본의 우호관계>
진한시기에 우리나라와 조선반도는 긴밀한 관계였고 경제문화교류도 늘어났다.
한조의 청동 주조의 기술과 제칠 기술은 조선에 전래되었고 조선의 명마 등의 특산물도 중국에 수입되었다. 고분 내부의 목관약식과 매장방식은 거의 완전히 한조와 고묘와 같다. 묘에서 출토된 청동기와 칠기는 어떤 것은 한조에서 온 것이다. 이는 당시의 중국과 조선의 문화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01초중-02』
한국사의 입장에서 보면 한 대의 중국과 한국 간의 관계라고 하면 유명한 한 무제의 한사군을 연상하게 되는데 중국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 이유는 서술의 원칙으로 종래부터 일관해 온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의 일반원칙을 게시한 다음, 중국은 “역사적으로 장기에 걸쳐 형성된 한민족을 주체로 한 다민족통일국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서술 내용으로 중시되어야 할 것으로써 각 민족 간의 상호원조, 공동발전과 함께 계급적 억압, 민족적 억압 및 외래 침략에 반항하는 내용을 충분히 표현해야 할 것이며 한편 민족 간의 대항쟁도 취급해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간단히 계급투쟁으로 귀결 되어선 안 된다고 한다.
<당과 신라의 우호관계>
수조와 당조 초년 조선반도의 국가(고구려, 백제, 신라)와 중국은 모두 왕래가 있었다. 7세기 후반에 신라와 당의 왕래는 빈번해졌다. 당의 외국 유학생은 신라인이 가장 많았다. 신라상인의 족적은 중원에서 남방까지 이르렀다. 신라의 물산은 당의 수입품 중 수위를 차지했다.
신라의 당 유학생은 많을 때는 200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귀국 후 당의 문화를 널리 전파시켰다. 그 중 유명한 사람으로 최치원이 있는데 그는 12세에 당에 와서 18세에 진사과에 합격했다. 그의 시문은 중국 문인에게 중시되었다. 조선의 음악은 중국인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