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와 여성
- 최초 등록일
- 2008.07.16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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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의 여성의 삶을 알아보는 글
목차
1.처가살이
2.재산상속문제
3.제사에 대한 의무
4.호적과 족보
5.조선시대의 자유부인과 열녀
6. 맺음말
본문내용
1.처가살이
-신사임당
율곡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우리나라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녀는 이원수와 혼인을 한 후 신사임당의 고향인 오죽헌에서 20년을 살게 되고 이율곡은 오죽헌의 몽룡실에서 태어나 6세까지 살게 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혼인후 바로 시집에 들어가 산다고 생각했지만 신사임당의 삶은 반대였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신사임당과 같은 여인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이원수는 처가살이를 했다는 얘기인데 남자가 처가살이 하는 것을 남귀여가라고 한다. 처가살이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계속 내려져 왔는데 조선왕조 지배층에서는 처가살이를 비판하였다. 조선왕조는 모든 것을 성리학으로 바꾸려 했기 때문에 혼례마저도 남자집에서 지내게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정착되지 못하였고 200년이 지나서야 남자집에서 혼례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응태 부부의 사랑
1998년 4월12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택지조성사업을 하기위해 분묘를 이장하던 중 4백 년 전의 시신과 한 여인의 애달픈 사부곡이 담긴 편지, 머리카락으로 만든 짚신, 시신의 아버지와 형이 보낸 편지와 만시가 발견되어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 애절한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이응태, 봉사의 벼슬을 지내고 불과 31세의 나이에 요절한 젊은 사대부였다.
무덤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유물을 통해 그의 삶을 알수 있는데 장성할 때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혼인후 처가살이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은 이응태의 부친 이요신이 아들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 장인의 안부를 물었다는 데에서 알수 있다. 당시 이응태 가문은 안동에서도 몇손가락안에 드는 권세있는 집안이었다. 그런 사대부가의 자제가 결혼 후 처가에 얹혀살았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사위가 결혼하면 처가에서 생활하고 처가에서 아기가 장대하면 친가에 온다. 이것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가정생활이지 조선후기의 처가살이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또한 무덤 속에서 발견된 애틋한 편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되는데 여인은 남편의 간병을 하면서 지극한 사랑을 글로 쓰게 된다.
참고 자료
이수광-애사 (드림박스2003)
kbs역사스페셜 -조선시대 여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kbs역사스페셜 -조선시대의 자유부인
kbs역사스페셜 -조선시대판 사랑과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