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12.10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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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그간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역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목차
1. 1960년대 부동산 투기(말죽거리 신화의 시작)
2. 1970년대 부동산 투기(복부인의 등장)
3. 1980년대 부동산 투기(아파트 시장을 중심으로)
4.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기 부동산 투기(강남 신드룸)
5. 참여정부 후 부동산 투기
맺음말
본문내용
1. 1960년대 부동산 투기(말죽거리 신화의 시작)
- 1960년대 말죽거리는 온통 논과 밭이었다. 이런 말죽거리가 북적거린 것은 서울시가 영동개발계획을 내놓은 66년 부터였다. 당시 강북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미개발 지역이었던 강남 지역은 영동개발계획으로 대표되는(일명 : 말죽거리 개발) 강남 개발 계획에 의해 전문적인 개발이 실시되며 부동산 투기 자본이 몰리기 시작했다.
강남 개발계획의 시초는 한강개발과 더불어 한남대교의 개통이었다. 한남대교가 개통됨으로써 서울의 중심지에서 강남까지의 거리는 엄청나게 단축됐다. 예전에는 중심지에서 강남으로 갈 경우, 배 삯이 10원인 한남나루터를 이용하거나 서빙고나루 혹은 한강진에서 나룻배를 타야 했고, 아니면 아예 영등포를 통해야 했다. 하지만 한남대교가 개통됨으로써 곧장 강남으로 이어지는 길이 뚫렸고 사람들은 더 이상 강남을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여기지 않게 됐다. 또한 한남대교의 개통과 더불어 그동안 전기도, 전화도 들어가 있지 않던 이 일대에 급속히 전기·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남대교 착공 후부터 서서히 상승하던 강남의 땅값은 교량공사 지연으로 68년경에는 약간 하락하는 기미를 보였으나 다리가 준공되자 다시 상승했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말죽거리 일대의 땅값은 한 평에 약 4천원에서 5천원 정도였다. 그리고 그보다 북쪽에 위치한 신사동, 압구정동은 홍수 때마다 침수가 되는 지역이었으므로 2천~3천원 선에서 거래됐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