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
- 최초 등록일
- 2008.02.03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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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
♤본론
1. 강남개발의 배경
2. 강남개발의 진행과정
3. 강남 개발의 특징과 정부의 역할
-채찍과 홍당무 동원한 강남 개발
4. 강남개발의 파급효과
5. 강남의 지가 상승요인과 원리
♤결론
본문내용
채찍과 홍당무 동원한 강남 개발
1970년 한강 이남의 광대한 땅에 이른바 영동 토지구획정리 사업의 바람이 일어났다. 한 차례의 땅 투기의 열풍이 일었고, 말죽거리(지금의 양재역 근처)란 지명이 갑자기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넓은 땅을 토지조성도 제대로 안한 채 들어와서 살라고 했으니 다급한 사람이 아니고는 땅은 사놓고도 관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개발사업 시행자인 서울시도 체비지가 팔리지 않아 골머리를 앓았다. 무엇보다도 개발 조성한 넓은 땅에 도대체 집들이 들어서 주지 않으니 개발사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시효과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관계자들은 몹시 초조해 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강남의 신개발지역으로 유도하기 위한 대책이 동원되었다
1. 시가지화 (영동지구 주택 건립 계획)
영동지구 토지 구획 정리사업과 정지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이곳은 황량한 광야였다. 문제는 빠른 시가지 화의 길 이었다. 사업 주체인 서울시로서는 이러한 광대한 땅이 그것도 비싼 값으로 팔려야 이러한 대공사의 비용을 메꿀 수 있었다. 또한 경부고속도로의 도로변에 아무것도 없는 비생산적인 들녘이 방치되고 있는 것도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즉 빨리 시가지로 만들어서 주민들이 들어와 집을 짓고 살아야 시가지화 되고 강북인구가 분산도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시는 스스로가 사업주체가 되어 주택을 짓고 주민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도가 논현동에 공무원 아파트를 건설한 일이었다. 그 다음은 1단지에서 8단지까지의 단층 주거건물의 분산 배치였다.
이 계획으로 압구정, 논현동, 학동, 청담동 등지에 모두 8개의 단지가 형성되었다. 서울시는 이 8개단지 내의 조성과 더불어 서울시는 시내버스 노선을 이 곳에 강제 배치하였고 이 후 이 단지를 중심으로 약간 씩 주택건설이 되기 시작하여 점차 시가지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2. 세금면제 (개발 촉진 지구의 특별 조치법)
잔존했던 농경사회의 흔적과 구릉지는 토지 구획정리의 불도저가 말끔히 쓸어내 버렸고 그 위에 격자형으로 큰 도로망이 뻗어 있었다. 또한 [영동지구 주택 건립 계획 확정]으로 주택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 했다. 여의도, 영동, 잠실만 가지고도 1,500만평에 달하는 허허벌판 이었는데 이곳을 시가지로 채워야 하고 거기에다 도심 부재 개발, 반도, 세종로 등 여러 곳의 특정가구 정비지구 등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촉진시키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여러 가지 부동산 관계 세금을 면제 해 주는 조치를 취하였다.
참고 자료
손정목 ‘서울도시계획이야기3. 한울’
김왕배 (2001)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 한울
김상헌(2004). `대한민국 강남특별시`. 위즈덤하우스
배규한(1999). `부동산 경제학의 이해` . 지샘
이래영(2004). `부동산투자론`. 삼영사
차학봉(2004). `부동산시장의 법칙`. 조선일보사
이정전(1999). `토지경제학`. 진영사
김용창(2004). `한국의 토지 주택정책`. 부연사
<참고 사이트>
서울육백년사 (http;//seoul600.visitseoul.net/)
서울시청 www.seoul.go.kr
자유기업원 www.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