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의 생애와 교육
- 최초 등록일
- 2006.09.29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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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사임당의 생애와 교육
목차
Ⅰ. 신사임당의 생애
Ⅱ. 신사임당의 교육
1. 효도와 자녀사랑
2. 형제간의 우애
3. 입지(立志)
4. 성실성 교육
5. 선비교육
6. 생활에 대한 지조(志操)와 청백(淸白)
7. 현모양처(賢母良妻)로서의 부도(婦道)와 학예(學藝)
8. 아랫사람에 대한 가내범절(家內凡節)
9. 어머니의 태아교육(胎兒敎育)
Ⅲ. 신사임당의 교훈
본문내용
Ⅰ. 신사임당의 생애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여성상으로 신사임당이 손꼽힌다. 그는 효녀, 착한 아내, 현철한 어머니로 평가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출한 예술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본래 이름은 인선인데 우리에게는 신인선이 아니라 신사임당으로 더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사임당은 그가 직접 지은 호인데, 중국에서 가장 슬기롭고 정숙한 부인인 태임을 본받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사임당이라는 그의 호를 통해서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였볼 수 있다.
1504년 연산군 10년 10월 29일에 출생한 사임당은 아버지 명화(命和)와 어머니 용인이씨(龍仁李氏) 사이에서 태어나 외가인 강릉 북평촌(北坪村)에서 자랐다. 그는 출생하면서부터 인물이 특출하게 삐어나고 영특하여 남달리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주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자로서 갖추어야 할 침선이며, 자수는 물론이고 어려서부터 공부에 열중하였기 때문에 경사에 능할 정도로 학문을 잘 익혔다. 예술로는 시와 글씨와 그림에까지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한다.
외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사임당은 한양에서 내왕하는 아버지보다는 집에 계신 어머니 교육으로 주로 성장했다. 외조부의 교훈과 어머니의 훈도를 받으면서 안견의 화풍을 배우게 되었는데 산수, 포도, 풀벌레 등 여러 가지 그림을 익히는 한편 부모로부터 유교경전을 공부하였는데 기본교육은 물론 그의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경사에도 능하게 되었다. 특히 어머니에게서 글도 배우고 여범(女範)을 고루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성장하였다.
그는 아버지 명화가 가장 아끼는 딸로 19세에 덕수이씨(德水李氏) 원수(元秀)와 결혼한 후에도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으나 결혼 몇 달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래서 친정에서 친정어머니를 계속 모시면서 3년상을 마치고서야 서울로 올라가 시어머니 홍씨에게 신혼례를 드리게 되었다. 이후 그는 시집의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으며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38세에 시집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와 수진방에서 10년동안 살다가 1551년 삼천동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그의 나이 48세에 갑자기 병고를 얻어 세상을 떠났다.
참고 자료
・ 율곡의 사상과 한국문화, 김익수, 수덕문화사, 2004
・ 디지털 한국학 http://www.koreandb.net/KPeople/KPShow.asp?ID=0006348&Type=L
・ 율곡학회 http://www.yulgok.or.kr/sitemap/sitemap.htm
・ 사임당교육원 http://www.saimdang.or.kr/data/saimdang.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