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수용과 발전
- 최초 등록일
- 2005.05.13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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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 본론
2.1. 한국 불교의 수용
2.2. 삼국시대의 불교
2.3. 남북국시대의 불교
2.4. 고려시대의 불교
2.5. 조선왕조시대의 불교
2.6. 근대의 불교
3. 결론
본문내용
『법화경』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순도가 전진에서 왔다고 하였으나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동진에서 와 “부처의 법을 처음 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 기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소수림왕은 그 회답의 사신과 함께 감사를 표시하는 예물을 보냈다. 2년 뒤에는 진나라(역사에서는 이를 동진(東晋)이라 부른다)에서 아도(阿道)스님이 왔다. 아마 동진은 동남쪽에 자리 잡고 전진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고구려에 불교를 전해 전진과 경쟁적으로 우호를 다지려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도를 두고 인도 사람 또는 오나라 사람이라고도 하여 본디 고구려 사람으로 위나라에 가서 수학한 뒤 돌아왔다고도 한다. 고구려에서는 초문사를 창건해 순도가 거처하게 하였고 이불란사를 창건해 아도가 거처하게 하였다. 두 승려는 고구려의 왕과 귀족들에게 열성적으로 설법하였다. 이를 두고 일연은 『삼국유사』에 “고구려 불법의 시작이다”라고 기록하였다. 하지만 앞에서 본 대로 순도가 처음 불법을 전하였고 아도가 왔을 때에는 처음으로 절을 창건하였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초전 불교를 두고 이설이 잇다. 최치원이 지은 『지증도헌(智證道憲)』비문에서는 고구려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자를 담시(曇始) 중국 승려였던 담시의 고향은 현재의 섬서성인 관중이다. 그는 광개토왕이 통치하던 395년에 고구려에 와서 10년간 머물렀다. 그 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신비한 사건이 전해진다. 그는 백족화상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그의 발이 얼굴보다 하얗고 진흙탕 속에서도 더러워지지 않는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연은 여러 기록을 고증해 그 오류까지 지적해가며 기재하였기에 굳이 이를 부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편 이때보다 앞선 시기에 이미 고구려에 불교 신앙이 전파되었다는 설도 잇다. 지정학적,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불상을 모시고 염불을 드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국가 공인이 아닌 일반적 신앙 형태였을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불교통사》 정의행 저, 도서출판 한마당. 1992.
《역사속의 한국불교》 이이화 저. 역사비평사. 2002.
《한국종교사》제임스 헌틀리 그레이슨 저. 강돈구 역. 민족사. 1995
《조선철학사개요》최봉익 저, 한마당, 1989
《韓國과 佛敎》 변밀운 저, 호암출판사.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