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불전의 건축적 변화
- 최초 등록일
- 2020.11.08
- 최종 저작일
-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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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후기 불전의 건축적 변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시대 후기 불교건축의 성격
1.1. 조선시대 불교의 흐름
1.2. 불교건축의 정체와 변화의 모색
2. 야외 의식의 성행과 사찰 공간의 대중화
2.1. 배치 형식의 특징
3. 대중 참여 공간의 정착
3.1. 배치 형식의 특징
4. 배치 및 건축 계획의 변화 요인과 해석
4.1. 후원 세력의 교체와 건축 계획의 변화
4.2. 조선시대에서 확장이 가지는 건축적 의미
5. 결론
본문내용
1. 조선시대 후기 불교건축의 성격
1.1. 조선시대 불교의 흐름
1.1.1. 조선시대 전기 불교의 흐름
조선시대는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연다는 정치적 명분 하에 고려의 많은 질서를 부정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교였다. 성리학은 종교라기보다 학문적 체계를 갖춘 이념이다. 그래서 당시 집권세력조차도 불교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인식은 매우 광범위하여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사찰에서 행해지는 제례에 대하여 당시 왕실은 유교에서 중요시하는 효(孝)사상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묵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때로는 장려하가까지 했다. 그리고 왕실에서 선왕 선후의 명복을 빌고 능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찰을 창건 또는 중건하는 경우가 비교적 많았다. 조선 개국으로 이루어진 성리학적 통치는 과거부터 이어오던 불교적 관습을 쉽게 대체할 수 없었으며 특히 유교가 가지지 못한 내세관에서 비롯된 죽은 자의 불교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1.1.2. 조선시대 후기 불교의 흐름
17세기 중반에 이르고 국가의 불교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16세기부터 이어지던 천변재이는 18세기까지도 이어져 사회는 어지러웠다. 백성들의 생활이 힘들어지자 나라에서는 국역을 사찰에 전담시켰고, 이것으로 인해 사찰 또한 유지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사찰은 16세기 중반부터 망자들을 기리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17세기가 되어서는 양란의 피해와 반복되는 자연재해로 인한 일반 백성들의 죽음에 대해 불교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설행되었던 천도의식 중에 사장 활발했던 것이 수륙재이며 이러한 변화 통해서 지배층 중심의 후원세력에서 백성 중심의 하는 후원세력으로 변화하게 되었고, 이것은 불교계 입장에서 엄청난 변화인 것이다.
1.2. 불교건축의 정체와 변화의 모색(16세기 초 ~ 17 세기 전반)
16 세기를 중심으로 불교건축에 있어서 공백과 같은 시간이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