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불전의 변화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23.07.01
- 최종 저작일
- 20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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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1) 레포트의 목적과 계획
2)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사찰
2. 본론
1) 조선 말기의 사찰
2)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불전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레포트의 목적과 계획
한국건축사 수업을 들으면서 불교 건축에 대해 배웠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그 중에서도 조선 후기의 불전의 변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려한다. 불전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사찰과 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관련 배경도 살펴보며 진행하려 한다.
2)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사찰
조선 전기와 후기를 구분 짓는 기준은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로 나누도록 하겠다. 조선 시대에 지어진 사찰의 가람 배치는 고려 시대의 가람 배치를 계승하여 자유롭게 발전시킨 형태이다.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부분 대웅전을 가장 깊은 곳에 배치하고 그 앞에 마당을 두고 주변에 다른 건물을 배치하여 중심공간을 형성한다. 그 앞에는 누를 만들어 영역을 구분하고 누 밖에는 천왕문, 일주문 등의 문을 설치하여 사찰의 영역을 나타낸다. 이는 조선 시대 서원과 사묘의 건축배치와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사찰 역시 예불 의례에 의하여 3단으로 위계가 구성되고 있는것이다.
-흥천사(태조 6년, 1397)
예시로 흥천사의 경우를 보면, 임진왜란 전에는 평지 가람도 건축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주로 산지 가람이 지어지게 된다. 흥천사는 건물이 조선 후기에 중수되기 때문에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본론
1) 조선 말기의 사찰
19세기 조선은 나라 안팎으로 소란스러웠으며, 신앙심도 약화하고 경제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민중들 사이에서는 말세론이 확산하면서 난해한 교리보다는 친숙한 민간 신앙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이는 19세기 말부터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등으로 건립되었다. 불상, 스님, 신도가 대방이라는 한 건물을 이용하였다.
2)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불전
- 용주사
정조가 1790년 갈양사 자리에 사도 세자의 능을 지키기 위해 세운 절이다. 경사가 있는 지역에서 배치하는 방법의 하나인 주불전의 좌우로 건물들을 수평적으로 띠를 이루는 배치를 하였다.
참고 자료
윤장섭, 한국건축사, 동명사, 1996
주남철, 김성도, 조선말기 서울 · 경기 일원의 사찰대방건축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1988.11
김현정, 천득염, 조선후기 불전에 나타난 용조각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20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