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우리나라의 과학자
- 최초 등록일
- 2020.10.31
- 최종 저작일
- 2020.10
- 9페이지/ 어도비 PDF
- 가격 1,500원
소개글
우리나라 과학자들과 그 과학자들의 업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목차
1. 장영실
2. 최한기
3. 홍대용
본문내용
장영실은 조선 전기 세종 때의 과학자이다.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를 만들었으며, 세계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 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외 여러 과학적 도구를 제작 완성하였다.
(장영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장영실의 조상은 원나라 소주, 항주 출신으로 기록 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고려때부터 대대로 과학기술분야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부친은 고려말 전서라는 직책을 지낸 장성휘이며 모친은 기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영실의 신분은 동래현의 관노였다.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태종 때 이미 발탁되어 궁중기술자 업무에 종사하였다. 제련, 축성,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으며 1421년(세종3) 세종의 명으로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다. 1423년(세종5)왕의 특명으로 면천되어 정5품 상 의원직이 되고 1432년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간으대 제작에 착수 하고 각종 천문의 제작을 감독하였다. 1433년(세종15) 정4품 호군에 오르고 혼천의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완성하고 이듬해 동활자인 경자자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활자 갑인자의 주조를 지휘 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를 만들었다. 1437년부터 6년 동안 천체관측용 대・소간의,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고정된 정남일구, 앙부일구, 주야 겸용의 일성정시의,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의 옥로를 제작 완성하고 경상도 채방별감이 되어 구리・철의 채광・제련을 감독하였다. 1441년 세계 최 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공으로 상호군에 특진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세종이 신병치료차 이 천으로 온천욕을 떠나는 길에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수레가 부서져 그 책 임으로 곤장 80대를 맞고 파직 당하였다. 세종은 곤장 100대의 형을 80대 로 감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 뒤 장영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