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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의 황제국 운영과 책봉질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고려의 군주관
3. 고려전기 황제국체제의 운영
4. 고려전기 책봉질서와 대외관계
5.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고려는 안으로는 황제국 이라 칭했지만, 밖으로는 국제질서에 순응하여 중국의 황제로부터 고려국왕이라는 칭호를 책봉(冊封) 받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고려가 내적으로 황제국 체제를 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혼란했던 동아시아세계의 전황과 삼국시대를 이어온 고려의 독자적인 천하관(天下觀)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우리는 고려의 왕을 왜 황제라고 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 방송에서는 고려국왕의 영웅성을 돋보이기 위해서 그러한 면을 부각 시켰을 뿐 이러한 국가체제를 운영했던 내면적 이유는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고려가 황제국 체제를 운영하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면 보다는 고려인의 국가관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발제문 에서는 고려의 황제국체제를 가능하게 했던 당시 고려인의 천하관과, 황제국 체제의 제도(制度)에 대해 알아보고, 고려가 왜 대외적으로 책봉질서를 통한 동아시아의 세계질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고려의 군주관
- 1) 고려전기의 천하관(天下觀)
고려 전기 동북아시아는 전형적인 삼각관계가 지속되었다. 발해(渤海)의 서북에서 등장한 거란족의 요(遼)와 북송(北宋), 고려가 삼각 관계를 형성 하였고, 이어 요의 동북방에서 화북까지 차지한 여진족의 금(金)이 요를 대신하여 남송(南宋),고려와 삼각관계를 형성 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금의 서북에서 몽고족이 등장하여 세조(世祖)에 의해 중국이 통일될 때까지 지속 하였다.
원간섭기 이전의 고려는 이러한 정세를 이용하여 자국은 천하의 중심이라 자처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는 조선과는 크게 구별되는 고려의 특성으로서, 고려인의 다원적(多元的) 천하관(天下觀)을 옅보게 해준다. 다원적 천하관이란 다수의 천자(天子)가 존재하고 이들이 각각 자신의 천하를 통치한다는 관념이다. 그렇게 보면 송(宋)외에 요.금.원은 물론 고려도 소천하의 중심국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을 바탕으로 고려는 황제국 체제를 지향하고, 해동천자(海東天子)를 자처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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