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문화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2.12.12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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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충북 충주는 중원이라불리며 고려시대의 중추적인 문화중심지였습니다...
충주문화에대해서 자세하게 정리된 자료입니다.
보시고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목차
1. 선사시대의 중원
⑴ 구석기 시대의 중원
⑵ 신석기 시대의 중원
⑶ 청동기 시대의 중원
2. 삼국 발전기의 중원
⑴ 삼국의 발전
⑵ 백제
⑶ 고구려
⑷ 신라
3. 삼국 항쟁기의 중원
⑴ 중원의 중요성
⑵ 고구려
⑶ 신라
4. 신라하대 중원지방의 호족
5. 고려시대의 충주
6. 조선시대의 충주
본문내용
조선을 개국한 태조는 개국 초기 고려의 문무관직 제도를 그대로 이어 받아 사용했다. 따라서 지방제도 역시 그대로 따랐다. 각종 제도가 점차 정비되면서 1395년(태조4) 한양부를 한성부로 고쳐 새 도읍의 명칭을 쇄신하고, 양광도를 충청도, 서해도를 풍해도로, 강릉과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로 고쳤다.
당시 충청도의 감영은 충주에 두게 되었다. 충주목은 충청도의 감영이면서 목사 1인, 판관 1인, 유학교수관 1인등의 관리가 있었으며, 별호는 고려 때와 같이 대원, 예성이라 하였다.
충주는 감영이 설치(1395)되어 1602년(선조35) 공주로 옮길 때까지 207년간 정치, 경제, 문화, 군사, 교통의 중심 도시로 발전, 충청도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주목을 끄는 것은 감영을 공주로 옮긴 점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충주는 임진왜란 때 크게 피해를 본 결과 많은 주민이 이전되었다. 그리고 지리적 위치가 충청도의 동북부에 치우쳐 있으므로 충청도 면적의 20%에도 못 미치는 남한강 유역의 중심지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새로 감영이 설치된 공주는 임진왜란 때 충주보다 피해가 적었던 곳이며, 충청도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금강유역의 중심 도시로서, 금강 수로는 물론 충청도 각지의 교통로가 연결되는 요지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조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