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의 징비록
- 최초 등록일
- 2012.11.18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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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유성룡이 1592년에서 1598년까지 7년 간의 기사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 저술한 것이다. 그리고 외손 조수익이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손자가 조수익에게 부탁해 1647년에 간행했으며, 자서가 있다.
1). 전란 전의 일본국과의 관계
일본의 국왕 평수길은 일본 66주를 통일한 뒤 마침내 외국을 침략할 뜻을 품었다. 그는 우리 사신은 자주 조선에 가는데 , 조선 사신은 오지 않는다면서 귤강광을 우리나라로 보내 통신사를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조선에서 이를 거부하자 평의지를 다시 조선에 보낸다. 일본에 다녀온 황윤길은 일본의 정세를 시급히 보고하며 반드시 평화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반면 김성일은 그러한 정세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 략>
11). 이순신의 하옥과 수군의 복몰
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처음에 원균은 이순신이 자기를 구원해준 것을 은덕으로 여겨 두 사람의 사이가 매우 좋았으나 조금 후에는 공을 다투어 점점 사이가 좋지 못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사형을 감하고 관직을 삭탈한 채, 그대로 군대에 편입시켰다. 원균은 한산도에 부임해서 첩과 함께 거처하면서 술을 즐기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적군이 쳐들어오자 원균은 도망쳐 버렸다.
12). 이순신의 재기와 전세의 정비
이순신을 다시 기용하여 삼도수군통제사로 삼았다. 왜병을 진도 벽파정 아래에서 쳐부쉈다. 이때 연해지방의 사람들 중에서 배를 타고 피란하는 이가 많았는데 이순신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관음포 전투의 승리를 끝으로 적군은 물러났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은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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