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재지이
- 최초 등록일
- 2010.06.19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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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요재지이』의 주요내용과 작품
1) 자유로운 사랑과 혼인, 행복 추구
애정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전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작가는 봉건예교의 억압을 받고 있는 남녀를 동정하고 그들의 자유 혼인과 행복에 대한 추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봉건적인 혼인제도를 비판하고 봉건예교에 반대하는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첫째, 작품은 봉건예교가 용납하지 못하는 ‘情정’의 역량을 긍정한다. 봉건예교의 핵심은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인간의 욕망을 없앤다.(存天理, 滅人欲.)’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에 해당하는 ‘정’을 ‘예’와 대립시키고 이것이 바로 혼인에서 행복을 얻게 되는 거대한 힘임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連城연성』에서 연성과 喬生교생의 사랑과 죽음으로 봉건적 제약에 대항하는 정신, 다시 살아나서 행복하게 사랑을 이루는 결말, 『阿寶아보』에서 孫子楚손자초의 아보를 향한 사랑, 그녀의 농담에 손가락을 자르고 상사병으로 사경을 해맬 때 앵무새에 혼을 맡겨 아보에게 날아가 곁을 떠나지 않고 결국 죽음으로도 변하지 않을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이야기 등은 모두 봉건예교에 대항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과 행복 추구를 긍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봉건예교를 비판하는 작품에는 봉건예교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지적인 여성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寧영녕』에서 영녕은 봉건예교가 엄격한 규방의 여성으로 가장이나 남자 앞에서도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 순수한 여성이며 봉건예교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무례한 남성을 벌할 수 있는 영리한 여성의 형상이다.
목차
1. 작가의 생애와 창작
2. 『요재지이』의 주요내용과 작품
3. 작품감상
본문내용
1. 작가의 생애와 창작
『요재지이』의 작가 蒲松齡포송령(1640-1715)은 明末명말․淸初청초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자가 留仙유선, 별호가 柳泉居士유천거사, 山東산동 淄川치천(지금의 淄博市치박시) 蒲家莊포가장 사람이다. 포송령은 점점 몰락해가고 있는 선비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명을 이루고자하는 열망이 있어 19세에 과거시험에 응시하였고, 縣현, 府부, 道도에서 모두 수석을 하였다. 그러나 鄕試향시에서 여러 차례 낙방하여 50여 세까지도 과거를 통해 공명을 이루지 못하였다. 72세가 되어서야 歲貢生세공생이 되었고 4년 후 생을 마감하였다. 포송령의 일생은 매우 가난하고 불우한 삶이었다. 그는 31세 때에 친구 孫蕙손혜의 요청으로 江蘇省강소성 寶應縣보응현에 가서 1년 동안 막료로 지내면서 직접 官場관장생활을 체험하였고, 그 다음해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일생을 대부분 치박과 濟南제남 일대에 머무르면서 글을 썼고, 70세가 되어서야 모두 거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역경이 많았던 삶은 아주 특이한 인생경력을 갖게 했는데, 그는 매우 광범위하게 사회 각층 인사들과 만났으며, 그 중에는 위로는 관료와 유지로부터 거인과 명사들도 있었고 아래로는 농부와 촌부, 비첩과 창기, 도박꾼과 건달, 술사와 도승까지 있었다. 이러한 풍부한 이력은 그의 『요재지이』 창작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의 과거에서의 실패와 궁핍한 생활은 그의 사상에서 과거제도의 부패와 어두운 사회현실에 대한 깊은 인식을 끌어내었다. 그는 동시에 곤궁한 생활 속에서 농민들과 운명을 함께 하며 농민들의 질고와 고통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적 한계로 인해 여전히 계급사회와 봉건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최고통치자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 시대적 한계에서 오는 미신사상과 숙명론 및 인과응보 사상 등이 그의 창작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