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시대구분
- 최초 등록일
- 2010.01.23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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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류의 등장부터 약 1만년 전까지를 아우르는 선사시대 명칭의 하나.
[[구석기시대;(Paleolithic)란 이름은 본래 유럽에서 기원한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선사시대는 사용되었던 유물의 재질 및 제작기술을 토대로 석기청동기철기시대의 세 시기로 구분되었으며, 이후 영국의 러복(John Lubbock)이 처음으로 석기시대를 구석기와 신석기의 두 시대로 나누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 일본인 학자에 의해 함경북도 동관진에서 처음으로 구석기유적이 확인되었으나,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연구가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구석기시대가 우리 역사의 일부로 된 것은 1960년대 초 남한에서 공주 석장리유적 북한에서 웅기 굴포리유적이 조사되면서부터이다. 이후 1970년대 후반 연천 전곡리유적은 유적의 범위 및 출토 유물의 양과 내용면에서 세계적이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조사된 단양 수양개 선사유적에서는 많은 양의 후기구석기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목차
구석기 시대
신석기
청동기시대
원삼국 시대
삼국 시대
구석기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본문내용
구석기 시대는
인류의 등장부터 약 1만년 전까지를 아우르는 선사시대 명칭의 하나.
[[구석기시대;(Paleolithic)란 이름은 본래 유럽에서 기원한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선사시대는 사용되었던 유물의 재질 및 제작기술을 토대로 석기•청동기•철기시대의 세 시기로 구분되었으며, 이후 영국의 러복(John Lubbock)이 처음으로 석기시대를 구석기와 신석기의 두 시대로 나누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 일본인 학자에 의해 함경북도 동관진에서 처음으로 구석기유적이 확인되었으나,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연구가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구석기시대가 우리 역사의 일부로 된 것은 1960년대 초 남한에서 공주 석장리유적 북한에서 웅기 굴포리유적이 조사되면서부터이다. 이후 1970년대 후반 연천 전곡리유적은 유적의 범위 및 출토 유물의 양과 내용면에서 세계적이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조사된 단양 수양개 선사유적에서는 많은 양의 후기구석기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발견된 유적의 숫자는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구석기유적은 전국적으로 100여 기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또한 임진•한탄강유역, 보성•섬진강유역 등 지역적으로 분포밀도가 상당히 높은 곳도 많다. 구석기시대는 대부분 지질학적으로 흔히 빙하시대로 알려져 있는 갱신세(更新世,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홍적세∼약 180만 년 전에서 1만년 전까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 아프리카에서 알려진 인류의 기원은 약 500만 년 전까지 소급되며, 발굴된 석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예는 약 250에서 3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듯 구석기시대는 인류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사피엔스 등 인류의 조상들이 등장하고 확산된 시기이기도 하다. 구석기시대의 인류는 주로 돌을 떼어내서 다듬어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였으며, 수렵채집생활을 하였다.
신석기
문화발전 단계에서 구석기시대 다음 금속기 사용 이전의 선사시대 명칭.
약 1만 년 전 이후, 곧 후빙기(後氷期) 기후의 온난다습화에 맞추어 인류의 생활이 이전의 구석기시대와 비교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한 선사시대의 하나이다. 아직 금속기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후의 청동기시대와 차이가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현재와 같은 기후 조건의 도래와 함께 수렵채집생활이 급격히 발달하였으며, 지역에 따라 원시농경과 목축 및 해안경제생활이 발전된 시기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