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고학
- 최초 등록일
- 2006.12.11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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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구고고학 수업 기말고사 문제 직접 자료 찾아서 답안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한국 고고학의 조사방법론
※한국 고고학의 시기구분과 문제점
※고고학의 자연 과학적 연대 측정법
※선사시대 토기의 종류와 변천
※삼국시대 절터의 가람배치와 유물
※삼국시대 무덤의 종류와 변천
※고구려와 백제도성의 변천과 성곽
본문내용
고구려 도성의 특징은 산성과 평지성이 서로 혼합된 것이라 하겠다. 평지성은 왕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평상시 거성이고 산성은 전시 등 군사적 비상시에 지배계층 뿐 아니라 국인들이 모두 들어가 수성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동명왕이 환인의 오녀산성을 도성으로 삼았을 초기에 대해서는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 하고성자고성의 연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논하기 어렵지만 서로 3km의 거리에 있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40년 후인 유리명왕 22년에 집안으로 도성을 정할 때인 중기부터는 이 특징이 선명히 나타난다. 환도성은 산에 축조되어 있고 국내성은 산 아래의 평지에 있으면서 거리가 서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환도성은 몇 차례의 개보수로 인하여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으며 지세가 가파르기 때문에 방어하기에 용이하다. 그런데 425년이라는 기간 중에 고구려왕이 진정으로 이곳을 도성으로 삼은 것은 40년을 넘지 않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시간은 국내성에 머룰렀을 것으로 보인다. 장수왕 15년에 평양성으로 천도하였을 시에는 대성산성과 평지의 안학궁이 세트형식을 띠고 있으나, 양원왕 8년에 축조하기 시작하여 평원왕 28년에 천도를 단행한 장안성은 하나의 성 내부에 북고남저형의 지세를 갖추고 북성, 내성, 중성, 내성 왕실, 중성치고, 외성 주민지역을 순차적으로 나누어 나갔고 그 중에서도 외성은 중국의 조방제를 채용하여 일정하게 십자로로 구획한 발달된 도성형태라 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