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를 통해 살펴보는 조선전기
- 최초 등록일
- 2008.10.23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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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자기를 통해 조선전기의 사상과 건국이념, 사회 문화적 특징을 알아본다.
목차
1. 서론
-조선 왕실이 택한 그릇 백자
2. 본론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고려 청자
-조선 백자
-고려 청자 VS 조선 백자
-고려 불교 VS 조선 유교 (고려와 조선의 사상)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 왕실이 택한 그릇백자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신흥왕조의 새로운 조직과 새로운 힘으로 정비된 지도체제는 결과적으로 오랜 전통을 쌓아온 불교문화의 급격한 쇠퇴를 촉진시켰다.
이러한 결과로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각 부문에 걸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공예미술 또한 새로운 발달을 이루어 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은 일반생활 풍조에도 본질적인 많은 변화를 일으켜, 여기에서 싹튼 새로운 조선적인 미의식이 생성되어 나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고려시대의 귀족처럼 섬세한 미적 감정이나 미에 대한 욕구가 없었으며 미에 대해서 배척하였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의 순수하고 잠재적이며 천성적인 미의식이 그들 의사대로 구형되는 결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배경에서 나타나는 가장 한국적인 미나 감각이 솔직하게 표현된 것이 조선 전기의 공예품(도자기, 목공, 금속)들이었다.
그 중 우리 조는 공예미술의 하나인 도자기를 통하여 조선전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자기를 통하여 조선전기의 특징을 알아보고, 조선전기의 도자기와 사상이 현대에 가지는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2. 본론
1.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고려 시대 왕실 그릇은 청자였다. 비록 초기의 제작 기술은 중국에서 도입되었지만 고려청자는 세계에 유례없는 비색의 발현과 상감 기법의 채용, 독특한 문양과 상형청자의 제작 등으로 고려 왕실과 귀족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일세를 풍미하였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고려 왕실은 향락에 젖어 민중과 유리되었고, 불교 역시 더 이상 고려의 사상계를 이끌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남으로는 왜구가 발호하고 중국의 원·명이 교체되면서, 고려는 신진사대부들이 주축이 된 조선에 500여 년간 이어온 왕권을 넘겨주었다. 조선의 개국과 함께 고려의 그릇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