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분단과 북한의 현실 및 남북 경제 협력
- 최초 등록일
- 2007.09.15
- 최종 저작일
- 2007.10
- 1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국토의 분단과 북한의 현실 및 남북 경제 협력
목차
Ⅰ. 국토의 분단과 북한의 현실
1. 민족의 비극
(1) 국토 분단의 원인과 과정
(2) 분단의 원인과 과정
2. 북한의 정치경제
(1) 북한의 정치 현실
(2) 북한의 경제 체재
3. 북한의 사회문화
(1) 북한 주민의 생활상
(2) 풍속과 언어의 차이
(3) 교육과 문화
Ⅱ. 남북 경제 협력
1. 남북 경제 협력의 배경
(1) 북한
(2) 남한
2. 남북 경제 협력의 전개 과정
3. 남북 경제 협력이 우리나라에 끼치는 영향
본문내용
Ⅰ. 국토의 분단과 북한의 현실
1. 민족의 비극
(1) 국토 분단의 원인과 과정
1) 민족의 비극 625전쟁
북한은 소련제 무기를 앞세우고 38선 전역에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에 남침을 개시했다. 그로부터 3 여 년 동안 우리의 강토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38선을 넘어 한꺼번에 밀고 내려온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우리 정부는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 유역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우방군의 참전으로 전세를 회복하기 시작해서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3개월 만에 서울을 되찾고, 마침내 그 해 10월, 38선을 돌파하고 압록강까지 도달,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이 때, 중공군이 북한을 지원해서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과 합세한 북한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면서 전쟁은 지구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전쟁의 조기 승리를 예상했던 북한은 이에 매우 당황해서 소련을 앞세워 휴전 회담을 제의해 왔다. 우리 국민의 거국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해 7월 10일부터 유엔군과 북한 간에 휴전 회담이 진행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 38선을 경계로 한 분단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도 남북한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
2) 625전쟁의 책임
민족적 비극인 625전쟁에 대해 북한은 지금도 남한의 북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1950년 6월, 국군과 미군의 일부가 38선을 넘어서 북한 지역 내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서, 북한은 이에 대해 ‘자기 방어적 반격’을 가한 것뿐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측의 이와 같은 주장은 다음과 같은 남침의 증거들에 의해 반박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